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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연] 한승헌 변호사의 마지막 책 ‘그분을 생각한다’…“사람을 통해 시대를 말하다”

그분을 생각한다

<그분을 생각한다>는 인권변호사 한승헌(韓勝憲, 1934~2022)이 생애 말년에 펴낸 인물 회고록이다. 2019년에 출간된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만나거나 깊이 교류했던 27인을 기억하며 쓴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난 정치인과 작가, 화가, 목사, 학자, 언론인 등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양심과 정의를 붙들었던 이들이 책 속에 한 명씩 등장한다.

책은 단순한 전기나 평가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각 인물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시대의 정황을 되짚고, 인간적인 고뇌와 선택을 기록한다.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전봉준 장군에서 시작해, ‘씨알 사상’의 함석헌, 진보신학자 김재준, 언론자유를 지킨 송건호, 민주주의를 외친 여정남,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27인의 삶이 담담한 문장으로 되살아난다.

한 변호사는 책 머리말에서 “이 세상과 이웃을 위해 사서 고생하는 분들을 널리 알려, 독자 인생의 도반(道伴)으로 삼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들었다”고 적었다. 이 책은 그가 남긴 마지막 저작으로, 한 인권법조인의 생애 전체가 응축된 고백이자 헌사이다.

한승헌은 1934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965년 변호사로 전향한 뒤에는 평생을 양심수와 민주인사들의 변론에 바쳤다. 동백림 사건, 민청학련 사건, 김지하 필화 사건, 인혁당 사건 등 굵직한 정치 재판의 변호를 도맡으며 두 차례나 구속되었고, 1975년에는 반공법 위반으로 292일간 수감되기도 했다.

1998년에는 김대중 정부에서 제17대 감사원장을 지냈으며,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심판에서 대통령 측 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는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헌신하면서도 꾸준히 글을 썼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정치재판』, 『법과 인간의 항변』,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 『한 변호사의 초상』, 『분단시대의 피고들』, 『한승헌 변호사 변론 사건 실록』(전7권), 『권력과 필화』 등이 있다.

방송 인터뷰하는 생전의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은 2022년 4월 20일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분을 생각한다>는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가치들, 곧 사람과 시대, 그리고 양심을 담아 아래 27명의 기록으로 남았다.

1. 전봉준 장군 – 갑오년의 농민 봉기, 서당 훈장이 ‘장군’이 되어
2. 함석헌 선생 – 겨레의 스승이신 사상가이자 민주투사
3. 김재준 목사 – 진보적 신학자의 ‘범용(凡庸)’을 우러르며
4. 이응노 화백 – 간첩죄로 끌려온 예술가의 부정(父情)
5. 신석정 시인 – 『슬픈 목가』의 서정에 담긴 저항
6. 안수길 선생 – 필화 사건 법정에서의 변호와 증언까지
7. 이병린 변호사 – 재야 법조의 대부, 불굴의 민주화투쟁
8. 조아라 선생 – 역사의 한복판을 지킨 겨레의 대모
9. 이태영 변호사 –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양성평등운동의 선구자
10. 이돈명 변호사 – ‘범인 은닉’의 ‘대역 조작’에 성공한 각본 재판
11. 김관석 목사 – 기독교의 반유신 본산 ‘종로5가’를 지킨 성직자
12. 이우정 교수 – 어리석을 만큼 곧게 살다 가신 의인
13. 김대중 대통령 – 인간 디제이의 추억
14. 김찬국 목사 – 변호인의 ‘관대한 처분’ 변론에 불복 항소한 신학 교수
15. 송건호 선생 – 청빈과 지조로 일관한 한국 언론의 초상
16. 리영희 교수 – 우상에 도전한 이성의 역정
17. 신동엽 시인 – 껍데기와 쇠붙이를 거부한 시인의 조국 사랑
18. 천상병 시인 – 동백림 사건의 파편 맞은 문단의 기인
19. 정창모 화백 – 만수대창작사에서 만난 고교 선배
20. 남정현 선생 – 법정에 선 ‘반미 용공’ 소설 『분지』
21. 이어령 교수 – 공안검사와 맞선 증언으로 문학을 옹호
22. 박우동 전 대법관 – 한 법관의 ‘판사실에서 법정까지’
23. 박현채 교수 – ‘지리산 전력’ 민족경제론자와 ‘개판’
24. 김상현 의원 – 거둘 것이 많은 그의 비범한 삶
25. 여정남 군 – 박정희 정권의 ‘사법살인’과 분노의 미루나무
26. 김경득 변호사 – 일본 귀화 거부한 재일 한국인 변호사 1호
27. 문재인 대통령 – 감방에서 시작된 우리의 ‘동행’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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