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수호 외교관’ 이한응 열사 순국 120주기 기념식

이한응 열사 순국 120주기…국권수호 외교관의 의로운 삶 되새겨
대한제국 말기 국권을 지키기 위해 외교 현장에서 몸바친 이한응(李漢應, 1874~1905) 열사의 순국 120주기를 기념하는 행사가 5월 12일 오후 3시30분~6시 외교타운에서 열린다.
충남 예산 출신인 그는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던 시기, 영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에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며 외교권 회복을 위해 분투하다 1905년 5월 12일, 런던 공사관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32세였다.
이한응 열사는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한 뒤 외무부에 들어가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01년 주영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됐고, 이후 서리공사로 승진해 런던에서 외교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그는 열강의 중심인 영국에서 국권 수호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며, 일본의 침략적 외교에 맞서 대한제국의 정당한 입장을 알리는 데 힘썼다.
1905년 11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이한응 열사의 공사관도 폐지 대상으로 전락했다. 일본 공사관은 그에게 귀국을 종용했으나, 이한응은 조국이 외교권을 빼앗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사대(事大)로 죽을 수는 없다”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한 마지막 외교적 항거이자, 자결을 통한 항일 의지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국제사회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훗날 수많은 독립운동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정부는 1962년 이한응 열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의 순국지인 런던에는 2001년 한국 정부에 의해 기념 동판이 설치되었고, 고향인 충남 예산에도 생가 복원과 함께 추모공간이 마련되었다.
외교관이란 단지 명령을 수행하는 관료가 아닌, 국권과 민권을 지키는 의로운 사명자라는 점을 그의 삶은 분명히 보여준 이한응 열사 순국 120주기를 맞아 열리는 이날 기념식은 그의 삶과 희생을 되새기며 오늘날 외교와 국제정치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자세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