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허영섭의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2010년, 도서출판 채륜)는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통치하는 상징으로 삼은 조선총독부 청사의 건립 과정을 심층적으로 다룬 책이다.
총독부 청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경복궁의 주요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일본 제국의 통치 본부를 세운 행위는 곧 조선 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식민지 지배를 물리적‧정신적으로 고착화하려는 일본의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측면에서 총독부 청사의 건축 과정을 하나의 권력 상징으로 해석하며, 그 건축 설계와 시공 과정은 물론 일본과 조선 사이의 권력 역학을 면밀히 추적한다.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지진제 신토 제례’부터 ‘총독부 설계자 라란데의 좌절’, ‘공진회와 신궁의 건립’, ‘한강 인도교와 경복궁 해체’, ‘도쿄제국대 건축과의 개입’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총독부 건립의 전 과정이 시간 순으로 정리된다. 경복궁 해체의 의미, 총독부 내부 설비의 근대성과 배치, 도시계획과 식민지 통치 전략 간의 관계 등도 다각도로 분석된다.
각 장의 제목과 본문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땅 위에 남기고자 한 흔적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집필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일제 식민통치의 정신적 기반이었으며, 이를 통해 일본은 조선인에게 ‘역사 단절’을 각인시키려 했다. 저자는 조선총독부 청사라는 물리적 구조물에 숨겨진 의도와 기획 과정을 면밀히 밝힘으로써, 식민 지배가 건축과 공간 배치, 도시구조를 통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독자뿐 아니라, 식민지 건축과 도시계획을 연구하는 학계 연구자와 대학생, 역사교육 종사자, 문화재 보존 전문가들에게도 유용하다. 특히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 등 현재 서울 도심의 구조가 일제의 도시 재편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가 다음 판을 계획하고 있다면 조선총독부의 건축 도면과 시공 사진, 자재 목록 등 시각 자료를 풍부하게 추가하고, 해방 이후 청사의 철거와 경복궁 복원 과정에 대해 보완한다면 총독부 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 허영섭은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난 언론인으로, 경향신문 정치부, 외신부, 사회부 등을 두루 거쳤으며 <뉴스메이커> 주간과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저널리즘스쿨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96년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조선총독부, 그 청사 건립의 이야기>를 출간했다. 저자는 현재도 <아시아엔>을 비롯해 몇 개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