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7일은 제69회 신문의 날이다. ‘신문의 날’은 구한말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고 민족을 개화하여 자주·독립·민권의 기틀을 확립하기 위해 출발한 <독립신문>의 창간정신을 기리고, 민주·자유언론의 실천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1957년 제정됐다.
그로부터 매년 이날에 즈음해 신문의 날 표어를 공모하는데, 제1회 수상작은 “신문은 약자의 반려”였다. 69회째를 맞은 올해 대상은 “신문이 내 손에, 세상이 내 눈에”가 차지했다. 뒤를 이어 “소통의 벽을 넘어 마음의 창을 여는 신문” “신문, 세상을 담다 사람을 잇다 미래를 열다”가 우수상을 받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수상작에 대해 십분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알기 위해 신문은 물론 TV조차 멀리하는 세태에 레거시 미디어의 대표선수인 신문을 아직도 애독하니 말이다. 정보 취득을 위해 유튜브를 애용하는 요즘엔 유튜브마저 최대한 축약한 ‘숏츠’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현존하는 미디어의 원조로서 대중이 활용 가능한 대부분 정보의 근원은 신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 이유로 몇가지를 들 수 있다. 신문을 만드는 기자들의 취재 열정과 이를 통해 생산되는 콘텐츠의 심층성이 바로 그것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필자는 그러나 ‘신문 지상주의’나 ‘신문 으뜸론’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란 점을 잘 안다. 되레 신문, TV 등 전통미디어와 유튜브, 숏츠 등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뉴미디어가 협업을 통해 미디어 영역을 확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에도 신문만이 생산할 수 있는 고품질 콘텐츠는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몰랐던 사실에 대해 일깨워주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4.3사건과 관련이 많다. 내가 4.3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1988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연재됐던 현기영 작가의 ‘바람 타는 섬’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 이전엔 신문이나 잡지 등 기사로 접한 적이 단 한차례 없었다. 한겨레 창간부터 합류한 제주 출신 고희범 기자와 이후 입사한 허호준 기자의 기사를 통해 4.3사건이 한겨레 지면에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다.
얼마간 또 잊혀져 갔던 제주 4.3은 2002년 4월 김건일 제주MBC 기자를 통해 내게 깊숙이 다가왔다. 당시 제주기자협회 회장이던 김건일 기자는 내게 제주 4.3세미나 참석과 축사를 부탁했다. 행사를 마친 김 기자와 나는 금세 의견일치를 봤다. “내년 4.3세미나는 서울에서 합시다. 4.3을 제주도에만 가둘 순 없지 않습니까?”
우리 둘의 의기투합은 이듬해 2003년 4월 프레스센터에서 이행됐다. 그리고 다시 이듬해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4.3사건과 관련해 국가 공권력이 민간인에 가한 폭력성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김건일 기자가 제주MBC 기자 시절, 4.3 진상규명과 현장 발굴에 누구보다 앞장섰다는 사실은 4.3관련 기념관이나 박물관 등에 가면 영상으로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4.3에 천착한 기자 또 한명이 있다. 한겨레 허호준 기자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허호준 기자의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 소개 글을 올렸다. “작년과 재작년 4·3을 앞두고 현기영의 소설 <제주도우다>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추천했습니다.(중략) 허호준 기자는 7년 간의 취재와 생존희생자, 유족, 목격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중략) 우리가 알아야 할 4·3의 진실들을 기획기사를 쓰듯이 정리했습니다. ‘19470301-19540921’은 제주 4·3이 시작된 날과 끝난 날입니다. 무려 7년 동안 지속된 비극의 역사였음을 보여주는 제목입니다.”
김건일, 허호준 두 기자 외에 4.3 진상규명 등에 평생을 바친 기자가 한명 더 있다. 제민일보 출신 김종민 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위원이다. 필자는 아직 그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제주에 가면 만날 계획이다. 그가 KBS 인터뷰에서 한 말을 옮긴다.
“자기 눈앞에서 부모가 잔혹하게 희생당하는 걸 목격했던 분들의 마음 상처가 쉽게 치유되겠는가? 사회적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제주도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4·3이 주는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때 제주가 진정 평화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2025년 오늘 69회 신문의 날, “신문은 약자의 반려”를 1957년 제1회 대상작으로 뽑은 기자 선배들의 안목이 매섭고 부럽다. 단 8음절의 이 표어가 여전히 유효하고 진실에 가깝지 않은가?
신문이든 방송이든, 본사가 서울 혹은 지역에 있든지, 기자들이 지혜와 용기를 갖고 협력, 합력하며 분투할 진대 진실은 마침내 백일하게 드러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