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칼럼

[인연-故홍승수 물리천문학부 교수] “제비 집이 사실이라면, 집짓느라 생긴 생채기는 진실”

고 홍승수 교수

내가 홍승수 서울대 교수님을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 종교발전포럼에서였다. 그리고 그 만남이 홍 교수님과의 유일한 대면 만남이었다. 박재갑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2009년 설립한 포럼은 서울대병원 내 암연구동에서 매월  1차례 종교뿐 아니라 각계의 통찰력 깊은 전문가들을 초청해 아침 7-8시 강의와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된다.

홍승수 교수님은 서울대 퇴임 후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NYSC) 원장으로 재직하며 출강, ‘진실과 사실’을 주제로 강의했다. 교수님의 비유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제비 집 짓느라 생긴 제비 생채기, 그게 바로 ‘진실'”

“강남 갔던 제비가 새봄에 돌아 와서 집을 짓습니다. 나뭇가지도 줍고, 지푸라기도 줍고, 또 진흙을 입에 가득 물고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보름쯤 지나 멋진 제비집이 완성됩니다. 그 둥지에서 이제 알을 품고 새끼를 기릅니다. 그런데 말이죠. 집을 근사하게 지은 제비들의 발톱은 너덜너덜 빠져있고, 부리도 상채기 투성이입니다. 이쁘게 지어진 집이 ‘사실’이라면, 제비 몸에 난 상처투성이, 그게 바로 ‘진실’이라고 저는 봅니다.”

강의 후 조그만 세미나실로 옮겨 티톡(Tea Talk)이 이어진다. 내가 말했다. “저희 기자들은 평생을 팩트(사실)를 찾아 이를 보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진실과 사실을 제비와 제비집으로 적확하게 드신 비유는 처음 봅니다.”

이후 나는 언론인들 모임에서 종종 그의 비유를 빌어 쓰곤 한다. 홍승수 교수님은 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 원장을 마친 후 충북의 산골 마을로 옮겨 사셨다. 이따금 내게 산골 풍경, 특히 한 겨울 눈 덮인 마을 사진을 보내주었다.

“이형, 한번 꼭 내려와서 이 풍광 같이 즐깁시다.” “네, 교수님.”

그렇지만, 홍 교수님과는 이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2019년 4월 그의 별세 소식이 신문 부고란에 실렸다.

눈보라 치는 날이면 이따금 홍승수 교수님의 제비와 제비집, 그 강의가 떠오른다.

아래는 홍승수 교수님 별세 때 <한국일보>가 쓴 부고 기사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번역한 원로 천문학자 홍승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가 15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7년 서울대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한 뒤 1975년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천문학연구소, 네덜란드 하위헌스연구소 등에서 연구하다 1978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에 임용돼 31년간 재직하다 2009년 퇴임했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현 국립청소년우주센터) 원장과 한국천문올림피드위원장을 지내며 천문학 인재 육성에 힘썼다. 한국 천문학 교육의 기초를 다지고 과학교육과 과학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2004)를 비롯한 다양한 천문학 서적을 번역했으며, 2018년 <하늘을 디디고 땅을 우러르며> <날마다 천체물리> 등의 책을 써냈다.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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