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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동 칼럼] 청출어람…”스승에게 배우고 나서는 곧바로 나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사진 배일동

요즘 세상에 조사를 즉 스승을 죽인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살기를 포기한거나 다름없다. 현대의 학문 경영방식이 옛날 방식과 달라, 마치 공장에서 어떤 모델의 금형(金型)을 통해 천편일률로 찍어 나오는 물건들과 같아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철학이나 예술 학문 등을 찾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요즘 세상을 잘 살아내려면 스승을 죽이기는커녕 온갖 것을 통해 스승을 위하며 스승을 떠받쳐 살리는 일들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그 속에서 밥줄을 간신히 유지하고 살 수가 있다. 이러한 일들은 수행자들 세계에서도 그런다고 들었다. 다 이해 할 수 있는 현실이다.

국악계만 봐도 그렇다. 소위 인간문화재 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예술표현의 다양성이 사라져 버렸다. 문화재 제도의 핵심적 가치가 ‘원형보전’에 있기 때문이다. 옛것을 보존하여 보전한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후학들이 문화재로 지정된 사람의 금형을 통해 그대로 모조되어 무수히 찍혀 나와 파당(派黨)을 형성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예술 개성들이 철저하게 무시되어 버렸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다거나 어떤 경연대회를 나간다고 할 때도 스승의 예술을 완벽하게 닮지 않으면 인정이 불가하고 그 판에서 살아날 수가 없다. 스승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독특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는커녕, 그 즉시 그 판에서 뭇매를 당해 버리는 저급한 예술판의 현실이다. 참 슬픈 일이다. 이 모두가 문화재 제도가 생긴 후에 일어난 일들이다. 청나라 때 화가 석도(石濤)가 말한 명문을 한번 읽어 보자.

“대저 그림이란 것은 인간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의 큰 법이요, 산천의 모습과 기운의 정화로운 피어남이요, 예로 지금까지 천지를 창생하는 기의 조화요, 음양의 기상의 큰 흐름이다. 붓과 먹을 빌어, 그것으로 천지만물을 화면으로 옮기면서, 그 천지만물이 나라는 존재 속에서 생성되고 노닐게 만드는 것이다. 요새 사람들은 이러한 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걸핏하면 뇌까리기를, 어느 대가의 준묘와 점묘야말로 내가 따라할 모델이라는 등, 어떤 대가의 산수를 흉내내지 않으면 명작으로서 후세에 오래오래 남을 수 없으리라는 등, 어느 대가의 청아하고 담백한 화풍이야말로 나의 그림의 품격을 세울 만한 기준이라는 등, 어느 대가의 정교한 테크닉에 도달치 못하면 단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뿐인 통속화에 그치고 말뿐이라는 등등의 애기만 한다. 이것은 내 그림의 주인인 내가 그놈의 대가들의 노예가 되어 부림을 당하고 있는 꼴이요. 그 대가들의 그림을 꼭 닮았다고 하자! 그래봤자 그것은 그놈의 대가들이 먹고 난 찌꺼기 국물을 들이켜는 꼴이니, 도대체 이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석도화론> 도올 김용옥 의역

행기지도(行己之道)다. 스승에게 배우고 나서는 곧바로 나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나의 길이란 무한히 펼쳐지는 자연속에 있다.

배일동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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