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철원 서면 와수리에서 비박을 했다. 양주 집에서 1시간 30분 남짓, 예년과 달리 올해는 나보다 마흔살 가까이 연하인 사람들과 동행했다. 올해 내 나이 아흔넷, 갈수록 시력과 체력이 떨어지는 게 실감 난다. 눈이 침침해 사진 촬영은 거의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촛점이 잘 맞춰지지 않는다. 아직은 걷는데 불편하지 않지만, 내년 후년은 어떨지 자신할 수 없다.

철원 벌판엔 벌써 벼베기가 끝나 황량한 느낌마저 든다. 나는 늘 그렇듯, 시집과 수필집 그리고 철학서적과 인문학 서적 4-5권을 배낭에 넣고,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벗삼아 읽었다. 이번엔 김태영 닥터의 시집과, <아인슈타인의 자유로운 상상>, <관습과 인습에서 탈출한 토크쇼>, <행동하는 인문학> 등을 들고 갔다.

맛집 찾는 여행은 딱 질색인 나한테 이곳 와수리에서 반겨주는 식당이 있다. 꿩냉면을 파는 ‘평남면옥’이다. 6.25 무렵 월남한 부모가 처음 열어 지금은 아들 며느리에게 물려준 이 집 냉면과 수육은 가성비 최고의 일품이다. 그래 봐야 두끼 매식買食, 나머지는 준비해간 누룽지 등으로 끓여서 간단히 해결한다.

사실, 이 글은 애초 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 눈은 오래 전부터, 나머지 눈도 희미하게 사물이 구분될 정도여서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침 일찍 <아시아엔> 이상기 발행인이 추석인사 전화를 해와 “다녀오셨으면 글로 남기셔야죠” 한다. 모처럼 용기를 낸다.
이번 2박3일 비박 동안 내가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뿐, 나머지는 동행자들이 찍어줬다.
넉달 뒤 다가올 2022년 설날, 그리고 내년 추석에 하늘은 아흔다섯 내게 비박을 더 허락하실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