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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하나가 만든 기적…영월 노인들이 월요일을 기다리는 이유

사진 고명진

강원도 영월에서 붕어빵은 단순한 겨울 간식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전 고향의 맛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집 밖으로 나올 이유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 종일 기다렸던 말벗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이 붕어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 있다.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이다. 그는 퇴직 후 영월에 정착해 사진과 문화예술, 지역 봉사활동을 연결하는 일을 해왔다. 이제 그의 관심은 좋은 사진을 찍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로 향하고 있다.

사진 고명진

7일 영월에서 만난 고명진 관장은 붕어빵 이야기를 꺼내자 목소리부터 밝아졌다. “붕어빵을 연결하니까 사람들이 와서 봉사를 하게 되는 거예요. 사진은 혼자 찍을 수 있지만 붕어빵은 여러 사람이 함께할 수 있잖아요.”

그가 참여하는 지역 활동 가운데 하나는 ‘스마일뱅크’다. 지역 주민들의 사진을 찍어 장수사진을 만들어주고, 졸업앨범 제작도 지원한다. 사진기자로 살아온 자신의 전문성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사업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고민이 생겼다. 사진 촬영은 전문기술을 가진 사람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고 싶어도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떠올린 것이 붕어빵이었다. 사진을 찍는 데는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지만 붕어빵을 만드는 일에는 여러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반죽을 준비하고, 붕어빵을 굽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특별한 기술보다 함께하려는 마음이 중요한 일이었다.

사진 고명진

붕어빵이 들어오자 봉사의 모습도 달라졌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나뉘기보다 서로 어울리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고명진 관장이 원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붕어빵 봉사를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노인네들이 말상대도 없는데 옛날 붕어빵이 생각나니까 좋아하는 거예요. 먹어보고 너무 맛있다고 전화하는 사람도 있어요.” 붕어빵 한 개가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는 셈이다.

고명진 관장이 영월에서 사람을 모으면서 깨달은 것도 거창한 이론이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는 일이었다. “제일 힘들었던 게 사람 모으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모이면 식사 대접을 하자고 생각했죠.” 처음부터 체계적인 공동체 운영 모델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사진을 찍고 문화행사를 하면서 사람들을 불렀고, 모인 사람들과 식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계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다음 모임을 기다렸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왔다.

지금 그가 관여하는 지역 모임은 약 40명 규모다. 이들이 모두 매번 참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관심과 형편에 따라 문화활동과 봉사에 참여한다. 고명진은 그 과정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보다 지속해서 만나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했다.

사진 고명진

그가 들려준 월요일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분들이 월요일만 기다려요. 월요일 오전 10시에 모임을 갖거든요.”

월요일이면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노인복지관에서 당구를 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수다를 떨기도 한다. 모임의 규모는 15명 안팎이라고 한다.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식사도 빠질 수 없다. 영월의 한 노인복지시설에서는 3천 원에 식사할 수 있다. 고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자활센터가 식사 준비를 맡고 있으며, 가격에 비해 음식의 질도 좋다.

“3천 원인데 7천 원짜리 식사 못지않아요. 그러니까 서로 밥을 사겠다고 하는 거예요.”

식사 한 끼의 값은 3천 원이지만 그 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집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것과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밥을 먹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고명진 관장은 이런 만남이 노년의 외로움을 덜어준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직장에서 물러나고 자녀들이 독립하면 하루 동안 제대로 대화할 사람조차 없는 경우가 생긴다. 전화 한 통이 반갑고, 누군가 자신을 불러주는 일이 소중해진다.

그는 붕어빵을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하고, 당구를 치고, 함께 점심을 먹는 시간이 노년의 생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활동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모으는 데도 돈이 들고, 장소와 식사, 재료를 마련하는 데도 비용이 필요하다.

고명진 관장은 문화재단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공모사업을 활용해 활동비를 확보하고 있다. 스마일뱅크 사업에는 약 2천만 원의 지원금이 마련됐고, 별도의 수해 지역 지원사업에서도 1천만 원을 지원받았다고 설명했다. 각각의 사업 목적에 따라 사진 제작과 지역 봉사, 참여자 지원 등에 예산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돈을 모으는 것보다 적은 예산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지역에서 뜻을 같이하고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특히 한 지역 봉사자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꺼냈다. 사진 강좌에서 인연을 맺은 뒤 한동안 활동을 쉬었다가 다시 참여한 사람인데, 지금은 모임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분이 계시니까 다른 사람들도 따라오는 거예요. 직접 붕어빵도 굽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나서서 도와주세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좋은 사업도 누군가 함께하지 않으면 오래가기 어렵다. 반대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생기면 작은 모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고명진 관장에게 지역문화운동은 거대한 시설을 세우거나 화려한 행사를 개최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모일 이유를 만들고, 그 만남이 이어지도록 돕는 일이다.

그는 최근 자신이 참여해온 여러 문화단체가 독자적으로 지원사업을 신청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맡기보다 각 모임에서 책임지고 활동할 사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문화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의 말에는 평생 기자의 또 다른 직업관이 담겨 있었다.

사진기자는 평생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직업이다. 기쁨과 슬픔, 갈등과 화해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진 속 사람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영월에서 고명진은 그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

장수사진을 찍는 일도 그렇다. 노년의 한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사람들이 이후에도 서로 안부를 묻고 교류한다면 그 사진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붕어빵 역시 마찬가지다. 겨울철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간식이지만, 영월에서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매개가 되고 있다.

고명진 관장은 건강을 돌보며 앞으로의 삶도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없어도 사람들이 계속 만나고 활동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자로 살던 시절에는 좋은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좋은 사람들과 오래 이어질 관계를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해진 듯하다.

그는 다시 붕어빵 이야기를 꺼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니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도 기쁨이 되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월요일을 새로운 노동이 시작되는 날로 여긴다. 그러나 영월의 어떤 노인들에게 월요일은 함께 밥을 먹고, 붕어빵을 나누고,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는 날이다.

고명진이 영월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붕어빵 봉사활동이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에게 기다려지는 삶인지 모른다.

카메라를 들었던 그의 손이 이제 사람들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한 장이 한순간을 남긴다면, 따뜻한 붕어빵 하나는 그 순간을 함께할 사람을 불러 모은다.

영월의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사진 고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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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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