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 혼례와 축의금, 기자들의 축하연…2002년 말라카에서 시작된 우정, 프놈펜까지
11월 1일 밤 자정 무렵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다. 이번 방문은 여느 해외 출장과 달랐다. 24년 전 말레이시아 말라카에서 처음 만나 오랜 우정을 이어온 소팔 차이(Sophal Chhay)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장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국제회의나 취재가 아니라 친구의 집안 경사를 축하하려고 국경을 넘는 여행이었다.
소팔은 결혼식 일정을 미리 자세히 알려주었다. 11월 2일 오전에는 캄보디아 전통 혼례가 열리고, 저녁에는 하객들이 함께하는 피로연이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숙소인 프랑지파니 호텔에서 행사장까지는 툭툭으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프놈펜의 코픽(Koh Pich) E-F 빌딩이 결혼식 장소였다.
2일 오전 8시쯤 행사장에 도착했다. 오전 11시까지 전통 혼례를 지켜보며 캄보디아의 결혼 풍습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오후 5시 무렵 다시 행사장을 찾았다. 두 차례에 걸쳐 참석한 결혼식은 같은 혼례이면서도 서로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오전이 가족과 종교적 전통을 중심으로 한 의례였다면, 저녁은 친척과 친구, 동료와 젊은 세대가 어우러지는 축제였다.

신부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스물한 살의 젊은 여성이다. 신랑은 네 살 연상인 스물다섯 살이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선 두 사람의 모습에서 결혼이라는 오래된 의례가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양가 가족이 새로운 인연으로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오전 혼례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에게 큰절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에서 보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부모를 공경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하는 동작에 담겨 있었다.

신랑 신부는 의식을 주재하는 스님들에게도 절을 올렸고, 불상 앞에서도 예를 갖추었다. 캄보디아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불교문화가 혼례에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모습이었다. 결혼이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 부모와 가족, 종교와 공동체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임을 보여주었다.

소팔의 불심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백담사 등 사찰을 함께 찾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그는 불교의 전통과 의례에 깊은 존중을 나타냈다. 프놈펜에서 딸의 혼례를 지켜보며 그가 평소 보여주던 종교적 태도를 다시 떠올렸다.
아침 식사는 비교적 간단했다. 오전 행사가 이어지는 동안 하객들은 식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점심 역시 간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었다. 오전과 점심의 소박한 차림은 저녁의 풍성한 연회 음식과 대비됐다.

저녁 피로연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행사장에는 둥근 테이블이 놓였고, 하객들은 대개 열 명씩 둘러앉았다. 직원들이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음식을 차례로 내왔다. 캄보디아식 요리를 중심으로 여덟 가지 안팎의 음식이 코스 형식으로 제공됐다. 하객들은 테이블 가운데 놓인 음식을 각자 먹을 만큼 접시에 덜어 먹었다.
한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한국의 잔치 문화와도 닮아 있었다.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 동안 하객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안부를 나누고, 서로를 소개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결혼식이 단순한 의례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자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기자들이었다. 언론인들이 앉은 테이블만 다섯 개 정도였다. 한 테이블에 열 명씩 앉았으니 50명 안팎의 언론인이 함께한 셈이다. 젊은 기자부터 오랜 경력을 지닌 선배 기자들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모임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소팔과 같은 언론사에서 일했던 선배와 동료, 후배들이 있었다. 기자 출신 정부 대변인도 참석했다. 소팔의 뒤를 이어 기자단체에서 활동한 인물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소팔과 함께 일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한 기자 출신 인사는 테이블마다 다니며 건배를 제안했다. 잔이 부딪히고 웃음이 터졌다. 기자들은 서로의 근황을 묻고 소팔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소팔이 오랜 기자 생활과 언론단체 활동을 통해 얼마나 폭넓은 인간관계를 쌓아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언론인은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취재와 업무로 맺어진 관계가 모두 사적인 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직장을 옮기거나 현장을 떠난 뒤에도 서로의 경사를 챙기고 가족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관계는 오랜 신뢰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이날 기자들의 축하는 소팔이 살아온 세월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젊은 하객들도 인상적이었다. 여러 테이블에 청년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었고, 소팔 가족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신랑 신부가 미리 촬영한 결혼사진 앞에서는 가족과 친척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친구와 지인들도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남겼다. 어느 나라 결혼식이나 젊은이들의 웃음과 사진 촬영은 빠질 수 없는 풍경인가 보다.

한편에는 우리나라의 축의금 접수대와 비슷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하객들은 축하 메시지를 남기고 축의금을 전달했다. 어떤 이들은 소팔에게 직접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테이블마다 놓인 봉투였다. 어린 시절 국제우편을 보낼 때 사용하던 에어메일 봉투가 떠올랐다. 무엇에 쓰는 것인지 물었더니 축의금을 넣는 봉투라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하객이 축의금을 전달하는 방식이지만, 테이블마다 봉투를 비치한 점이 독특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친분과 형편에 따라 30달러, 50달러, 100달러 등으로 축의금을 전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결혼 비용을 서로 나누고 상대의 기쁨에 동참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부조 문화와 닮았다. 물론 축의금 문화에도 사회적 부담이 따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본래 의미는 액수보다 마음을 전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데 있을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직업과 삶도 다양했다. 한 자리에서는 외국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화장과 장례 절차를 돕고 유해를 고국으로 송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팔은 그 일을 두고 죽은 이와 살아 있는 가족을 연결하는 거룩한 직업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결혼식은 새로운 삶의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을 마지막까지 돌보는 직업의 의미를 듣게 된 것이다. 삶의 시작과 마지막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인간을 존중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장으로 오가는 툭툭도 이번 여행의 재미 가운데 하나였다. 숙소에서 행사장까지 요금은 대개 2~3달러 정도였다. 운전기사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우리는 프놈펜에 머무는 동안 툭툭을 다섯 차례가량 이용했다. 분주한 거리와 오가는 사람들, 도로 양쪽의 상점과 건물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캄보디아의 혼례를 지켜보며 한국의 결혼식도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예식장 일정에 맞춰 결혼식을 한두 시간 안에 마치는 경우가 많다. 하객들은 축의금을 내고 예식을 지켜본 뒤 식사하고 돌아간다. 반면 이번 캄보디아 결혼식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여러 시간에 걸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쁨을 함께했다.
어느 방식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회와 문화, 생활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프놈펜의 결혼식은 혼례가 두 사람만의 행사가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온 인간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내게 소팔은 단순한 외국인 친구가 아니다. 우리의 인연은 2002년 말레이시아 말라카에서 시작됐다. 당시 아시아 각국의 언론인들은 서로 다른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활동하면서도 국경을 넘어 교류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누었다. 그 인연은 아시아기자협회 활동으로 이어졌고, 아시아엔을 통해 아시아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는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24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시아는 크게 변했다. 언론환경도 달라졌고 국제정세도 여러 차례 요동쳤다. 우리 역시 젊은 기자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긴 세월 속에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족의 경사를 축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이번 방문에는 정현 실장도 동행했다. 나는 소팔의 딸 부부를 축하하기 위해 한국 도예가 연파 신현철 선생의 달항아리를 선물로 준비했다. 둥글고 넉넉한 모습의 달항아리에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캄보디아의 전통 혼례에 한국의 전통미를 담은 선물이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이튿날인 11월 3일, 소팔은 우리를 자신의 주말 별장으로 안내했다. 프놈펜에서 공항 인근 방향으로 한 시간가량 이동한 곳이었다. 소팔이 직접 설계했다는 별장은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살린 공간이었다.

특히 독특했던 것은 울타리였다. 커다란 나무 바퀴들을 활용해 경계를 만들었는데, 오래된 수레바퀴를 재활용한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면서도 주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별장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거나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회의나 대화를 나누기에도 적합했다. 태양광 발전설비도 설치돼 있었고, 앞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낚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마당에는 바나나와 망고를 비롯한 여러 열대과일이 자라고 있었다. 소팔은 직접 과일을 따서 맛보게 했다. 나무와 열매, 연못과 울타리가 어우러진 곳에서 도심과는 또 다른 캄보디아의 생활문화를 만났다.
소팔은 주말이면 가족은 물론 기자 선후배와 친구들을 초대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전날 결혼식장에서 수많은 사람과 어울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품이 별장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더욱 반가운 제안도 있었다. 내년 캄보디아에서 아시아기자협회 총회가 열리면 회원들과 하루쯤 이곳에서 함께 지내자는 것이었다. 회의장에서 공식 일정을 마친 뒤 자연 속에서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시간이다. 아시아 각국 기자들이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데 이보다 편안한 공간이 또 있을까.
2027년은 한국과 캄보디아가 재수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런 해에 캄보디아에서 아시아 언론인들이 다시 만나 우정과 협력을 다진다면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소팔의 제안은 단순한 별장 초대가 아니라 앞으로도 인연을 이어가자는 약속처럼 들렸다.
이번 프놈펜 방문은 결혼식 참석을 넘어 캄보디아의 풍습과 전통, 사람들의 관계망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시간이었다. 부모에게 큰절을 올리는 신랑 신부, 스님과 불상 앞에서 예를 갖추는 혼례, 테이블마다 놓인 축의금 봉투, 여덟 가지 안팎의 음식을 나누는 저녁 연회, 세대를 넘어 모인 기자들의 축하와 건배가 기억에 남는다.
그 모든 풍경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국제교류는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 경제협력 협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친구의 딸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가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며, 한 식탁에 둘러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이루어진다. 오히려 그러한 인간적 신뢰가 오래 지속되는 국제협력의 토대가 아닐까.

2002년 말라카에서 만난 소팔과 나는 2026년 프놈펜에서 그의 딸 결혼식을 함께했다. 이제 스물한 살 신부와 스물다섯 살 신랑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우리 세대가 쌓아온 우정이 다음 세대의 만남과 인연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앞으로의 세월을 함께 걷겠다는 약속이다. 우정 역시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면서도 오래도록 마음을 나누겠다는 약속일 것이다.
프놈펜에서 보낸 시간은 그 두 가지 약속을 함께 생각하게 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서로를 기억하고, 기쁨을 나누며,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마음이다.
소팔의 딸과 사위가 오래도록 서로를 아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24년 전 말라카에서 시작된 우리의 우정도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