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김진안 칼럼] 대통령 골프 논란과 선진국의 품격

태릉 골프장

대한민국이 세계가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OECD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 이미 오래다. 경제, 문화,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기준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건만, 유독 정치권의 논쟁 수준만큼은 과거의 후진적 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야가 또다시 대통령 골프라는 해묵은 화두를 들고 나와 연일 시끄러운 모습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주말 골프가 비난과 정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격무에 시달리는 국가 지도자가 주말에 운동을 하며 리프레시를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권리다. 이를 두고 대단한 비리라도 찾아낸 양 폭로전과 공방을 벌이는 정치권의 모습은 목불인견의 국력 낭비이자 글로벌 스탠더드에 전혀 맞지 않는 한심한 행태다. 비용 문제나 동반자 여부 등 지엽적인 논란을 만들어 공격하는 쪽이나, 이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방어에 급급한 쪽이나 수준이 낮기는 매한가지다. 민생과 국익을 위해 1분 1초가 아까운 시기에, 정치인들이 이런 비본질적인 가십성 이슈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때인가.

이런 한국의 뉴스들을 접하다 보니 문득 거의 20년 전 중동·구유럽 지역장으로 근무하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머물던 시절, 그곳에서 자주 다녔던 대표적인 골프장 세 곳의 여유로운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당시에는 비엔나 근교에 골프장이 워낙 많아 주말에도 필드가 언제나 한가롭고 여유가 넘쳤다.

가장 먼저 시내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훌륭했던 ‘브룬(Brunn)’ 골프클럽이 떠오른다. 이곳은 유럽에서 드물게 한인 교포가 소유하고 운영했던 곳으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조경 속에서 현지 한인 대회가 자주 열리곤 했다. 타국 생활을 하던 중동·구유럽 지역의 동포들이 주말마다 모여 따뜻한 정을 나누고 소통하던 친근한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반면, 유러피언 투어 대회를 개최했던 ‘폰타나(Fontana)’ 골프클럽은 거대한 호수와 전략적인 벙커, 긴 전장을 갖춘 유럽 최정상급의 챔피언십 코스였다. 필자 역시 이곳의 회원권은 따로 없었기에 평소에 자주 찾지는 못했으나, 본사나 외부에서 귀한 손님이 올 때면 격식을 차려 영접하고 접대하던 최고급 상류층의 코스로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 쉬로스쉔보른 골프장

그러나 그 수많은 명문 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사랑했고 정회원 멤버십을 가졌던 곳은 단연 슐로스 쇤보른(Schloss Schönborn) 골프클럽이었다. 비엔나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서인지 주말에 가도 항상 비어 있다시피 했던 이곳은 전 세계 최고급 코스들의 연합인 ‘Finest Golf Courses of the World’의 정식 회원 클럽으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독보적인 명문이다. 18세기 초 바로크 양식의 귀족 성(城)을 클럽하우스로 사용하는 이곳은 골프장 비즈니스로 큰돈을 벌려는 목적보다는, 그저 조상 대대로 내려온 104헥타르의 거대한 영주 성 정원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비용 정도만 커버하려는 듯한 고고한 비상업적 분위기가 풍겼다.

그곳의 정통 회원제 방식은 한국과 완전히 달랐다. 성인 기준 연간 2,659유로(한화 약 400만 원) 안팎의 연회비만 내면 실제 필드에 나설 때는 주말이든 평일이든 돈을 따로 전혀 내지 않았기에, 언제든 내 집 마당처럼 필드에 나갈 수 있었다. 주말에 할 일 없으면 미리 예약을 안 하고 홀로 갑자기 방문해도 받아주곤 했다.

외부 비회원의 그린피도 주말 기준 160유로 선으로 명문의 위상에 비해 매우 합리적이었다. 캐디도, 전동 카트도 없이 혼자서 골프백을 메거나 수동 트롤리를 끌고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인공적으로 산을 깎아 만든 한국의 코스들과 달리, 수백 년 된 아름드리 거목이 빽빽한 궁전 숲을 그대로 페어웨이로 사용했기에 혼자 갔을 때 홀 깊숙이 들어가면 문득 무서움이 밀려올 만큼 완벽한 고독과 정적이 흐르던 곳이었다.

걷기 지치면 뒷팀에게 먼저 가라고 순서를 양보하면 그만이었고, 9홀이 끝나면 클럽하우스에서 가볍게 스낵을 먹은 뒤 다시 나설 뿐 한국처럼 하루를 통째로 소비하며 대기하는 법도 없었다. 왕복 이동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 한국식 골프에 지치고, 이제는 몸마저 불편해져 지난 10년간 필드를 떠나 있지만, 거의 20년 전 비엔나에서 경험한 골프는 허례허식을 뺀 완벽한 스포츠이자 힐링이었다.

유럽에서 골프는 우리나라 동네 파크골프장에 가는 수준으로, 특별할 것 없는 편안한 일상 운동이다. 그렇기에 돌아보면 한국의 필드 풍경은 참으로 기이하다. 한국에서는 왜 유독 많은 여성 골퍼들이 하나같이 짧은 스커트를 차려입고 모두가 비싼 고급 브랜드 골프웨어를 입고 플레이하는지 의문이다. 스포츠의 본질을 생각하면 초보자나 중장년층을 막론하고 허리를 숙이고 수없이 걷는 필드에서 그런 복장을 고집하는 문화는 대단히 불편하고 비실용적이며 모순적이다. 운동을 하러 나선 것인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선 것인지 주객이 전도된 듯한 복장 문화는 스포츠맨십보다는 타인의 시선과 유행에만 매몰된 한국 골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인들은 한여름 무더위가 찾아오면 남녀 불문하고 그저 시원하고 활동적인 반바지 차림으로 필드에 나선다. 이름난 명품 골프복 대신 평범한 스포츠웨어나 가벼운 바지를 툭 걸치고 나와 오롯이 걷고 치는 스포츠 본연의 즐거움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옷으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골프를 편안한 유럽에서 배워서인지 국내에서 골프장에 가면 많이 어색하곤 했다.

유럽의 골프가 자연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립적이고 여유로운 생활 스포츠라면, 한국의 골프는 어느새 짜인 시간표 속에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돈을 쓰는 서비스 산업이 되어버린 듯하다. 필드 위의 과시적 복장 유행이나, 정치권이 골프라는 소재를 들고 나와 싸우는 방식 역시 이러한 한국 골프 특유의 보여주기식 시선과 과도한 의미 부여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언제까지 우리가 이러한 비본질적인 정쟁과 가십에 국력을 낭비해야 하는가. 옷차림의 화려함보다 스포츠맨십이라는 내면의 품격을 중시하고, 넓은 필드를 비워둘지언정 상업성에 휘둘리지 않던 유럽 골프의 여유처럼, 이제 대한민국 정치권도 선진국 국격에 걸맞은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한심한 폭로전과 부차적인 논쟁을 전면 내려놓고, 민생과 국가 미래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품격 있는 정치를 간곡히 기대한다.

내가 이재명 대통령의 골프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든 골프와 관련해 이런 소모적 논쟁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권의 과거에 같은 사안에 대해 내로남불적 행태를 비난하는 분도 있지만, 품위 있는 보수는 그들과 달라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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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지역장 전무, 삼성SDI 마케팅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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