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박수, 외과의사에게 보내는 감사…진정한 존경은 누구의 몫인가

성남의 작은 음악회에서 시작된 질문…”작곡가와 연주자처럼 의학의 개척자와 집도의도 함께 존중받아야”
황건 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 전문의이자 이화여대 초빙교수가 국제학술지 《Journal of Trauma and Injury》에 「작곡가에서 연주자로, 혁신가에서 외과의사로: 진정한 존경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From composer to performer, from innovator to surgeon: where does respect truly belong?)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2026년 2월 18일 게재가 승인된 이 글은 피아노 연주와 외과수술의 공통점을 통해 창작과 실천, 의학적 혁신과 임상 현장에서의 헌신이 갖는 의미를 성찰한다. 아시아엔은 황 교수의 글을 바탕으로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성남의 한 음악회장. 젊은 피아니스트 박진형의 손끝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지휘자 금난새가 함께한 이날 공연에서는 「보칼리제」, 「전주곡 올림다단조 작품번호 3-2」, 「피아노 소나타 2번 내림나단조 작품번호 36」 등이 연주됐다.
70~80명가량의 관객은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박수를 보냈다. 공연이 끝난 뒤 금난새가 던진 한마디가 황건 교수의 마음에 남았다.
박수는 무대 위 연주자에게만 보내는 것이 아니다. 연주자가 잠시 생명을 불어넣은 음악을 창조한 작곡가에게 보내는 존경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이 말을 들으며 자신이 평생 몸담아온 외과수술의 세계를 떠올렸다. 수술에 성공해 환자가 살아났을 때 그 감사와 존경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눈앞에서 생명을 구한 외과의사일까. 수술법을 처음 고안한 의학자일까. 아니면 오랜 세월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온 스승들과 의학의 선구자들일까.
음악에서 피아니스트는 작곡가가 남긴 악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작곡가의 음악적 구상이 연주자의 해석과 기교를 거쳐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외과수술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외과의사가 사용하는 수술법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에 걸친 해부학 연구와 임상 경험, 새로운 수술법의 개발, 시행착오와 교육을 통해 발전해 왔다.
하지만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순간은 수술실에 있는 의사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축적된 지식이 실제 생명을 살리는 기술로 바뀌는 순간이다. 황 교수는 이 점에서 외과의사를 무대 위 피아니스트에 비유한다. 연주자는 작곡가의 음악을 해석하지만, 그날의 공연을 완성하는 사람은 연주자 자신이다. 외과의사 역시 선배 의학자들의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지만, 수술의 결과에 대한 판단과 책임은 수술대 앞에 선 의사에게 있다.
그렇다면 외과의사에게 보내는 존경은 두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첫째는 실제 수술을 수행한 의사에 대한 존경이다. 수술 현장에서 요구되는 정확한 판단, 용기, 기술적 숙련도와 책임감은 그 순간 의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둘째는 의학의 전통과 선구자들에 대한 존경이다. 윌리엄 홀스테드, 에밀 테오도어 코허, 마이클 드베이키, 파피노 등 현대 외과학의 기초를 닦은 의학자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의사의 기여가 오늘날의 수술을 가능하게 했다.
환자가 수술 후 집도의에게 감사할 때 이러한 의학의 역사를 의식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사에는 수술을 집도한 한 사람뿐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져 온 의학적 성취에 대한 존중도 담겨 있다고 황 교수는 설명한다.
그는 프랑스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작품 「무신론자의 미사」에 주목한다. 작품에 담긴 외과의사의 명예에 대한 성찰은 수술이 지닌 순간성과 덧없음을 보여준다.
외과의사의 명성은 배우의 명성과 닮아 있다. 배우의 연기는 공연이 끝나면 사라지고, 외과의사의 뛰어난 기술 역시 그 사람이 떠나면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외상외과 의사는 위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행동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가 안정되면 자신의 역할을 마친다. 그 과정이 언제나 대중의 주목이나 박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황 교수는 발자크의 표현을 빌려 외과의사를 ‘한순간의 영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개별 외과의사의 수술 행위는 한순간에 끝나지만, 그가 사용한 수술법과 의학적 지식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명성은 희미해져도 그가 발전시킨 기술은 다른 의사의 손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구한다.
황 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피아노 연주에 비유한다.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는 남아 있지만, 공연장에서 울려 퍼진 박진형의 연주는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연주자가 없었다면 악보는 청중에게 살아 있는 음악으로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외과의사도 마찬가지다. 축적된 의학 지식은 책과 논문, 교과서에 남아 있지만, 그것을 실제 환자의 회복으로 연결하는 일은 살아 있는 의사의 판단과 손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황 교수는 외과수술의 성공을 특정 의사 한 사람의 성취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환자를 살리는 일은 수많은 세대의 의학적 기여가 이어져 온 결과다. 개척자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수술법도 없었을 것이고, 숙련된 집도의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수술법도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
음악회에서 박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향하지만, 그 안에는 작곡가에 대한 존경도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수술 후 환자가 의사에게 보내는 감사에는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과 의학의 발전을 이끌어 온 선구자들 모두에 대한 존중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외과수술에 대한 감사는 어느 한 사람에게만 향하는 감정이 아니다. 의학적 지식을 창조한 사람과 그 지식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사람, 그리고 치유가 이루어지는 찰나를 함께 존중하는 마음이다.
성남의 작은 음악회에서 시작된 물음은 결국 의학의 본질에 관한 성찰로 이어졌다. 환자의 생명을 구한 의사의 손끝에는 그가 직접 만난 적 없는 수많은 선배 의학자의 지식과 헌신이 살아 있다. 작곡가의 음악이 연주자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듯, 의학의 역사도 오늘의 수술실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