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오늘 미국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1년 5개월이라는 이례적인 주한 미국대사 공석 사태를 끝내고 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미셸 박 스틸(Michelle Park Steel) 신임 대사의 첫 일성은 짧지만 강렬했다.
유창한 한국어로 전한 그 문장에는 한미 관계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오해와 착시를 단칼에 베어내는 냉혹한 현실정치(Realpolitik)의 본질이 담겨 있었다.
공항 귀빈실 밖과 영사관 앞은 입국 첫날부터 진영 대립의 어수선한 풍경이 연출됐다. 진보 진영 시민단체들은 “대결주의자 거부” 피켓을 들고 기습 시위를 벌였고, 보수 진영 일각은 ‘한국계 동포 대사’라며 맹목적인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외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감정적 이념 시위와 혈연적 착시는 대한민국 국익에 백해무익할 뿐이다.
스틸 대사는 한국 정치를 구원하러 온 인물도, 그렇다고 한국을 해하러 온 적대자도 아니다. 그녀는 오직 미국 헌법에 선서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 이익(America First)을 타협 없이 관철하기 위해 파견된 ‘미국의 전권 정치 대사’다.
단언컨대 스틸 대사는 여지껏 한국에 부임했던 기존의 그 어떤 전문 외교관(Career Diplomat) 출신 미국대사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이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한국 정부에는 가장 무섭고 까다로운 미국 측 대변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종전의 관료 출신 대사들은 미 국무부의 엄격한 지침과 보고 라인을 준수하며 절차와 관례를 중시했다. 반면 연방 하원의원 출신인 스틸 대사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을 비롯한 공화당 실세들의 추천으로 발탁된 중량급 정치인이다. 여기에 캘리포니아 공화당 의장을 거쳐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으로 재직 중인 남편 숀 스틸(Shawn Steel)의 입지까지 결합되어 있다. 백악관 수석보좌관진 및 미 의회 핵심부와 언제든 직접 소통할 수 있는 ‘MAGA 파워 커플’이 서울에 입성한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서울에서 태어나 이민을 간 실향민 2세로,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 언어와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는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 외교 당국이나 정치권이 어설픈 명분론, 감정적 설득, 혹은 언론 플레이를 펼칠 때 이를 사전에 단칼에 읽어내고 정면 차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서적 기대감에 기대려 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이보다 무서운 상대를 만나기 어렵다.
결국 이재명 정부가 스틸 대사를 어떻게 다루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녀는 한국의 목을 겨누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더없이 유용한 한국의 후원자이자 백악관 내 대변인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국내 정치 세력이 그녀를 이념적 재료로 삼아 길거리 시위를 이어가거나, 이재명 정부가 대북·대중 외교관 및 기업 규제 이슈에서 이념적 대립각을 세운다면 스틸 대사는 워싱턴 핵심부에 한국에 불리한 보고를 직접 타전하는 가장 공격적인 스피커로 변모할 것이다. 상원 인준 과정에서 한국 내 미국 기업(쿠팡 등) 조사를 ‘차별적 행위’로 규정했던 발언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반대로 이념적 색채를 완전히 빼고 철저한 ‘실리적 거래(Deal-making)’로 접근한다면 스틸 대사는 최상의 자산이 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한국이 추진해야 할 핵추진 잠수함 건조,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협상, 조선·방산 협력, 대미 투자 기업 인센티브 확보 등은 미 국무부나 국방부 관료주의의 벽에 가로막히기 쉬운 고난도 현안들이다. 스틸 대사가 가진 “백악관 직통 채널”을 역이용한다면, 관료적 답보 상태를 뚫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톱다운식 정치 타결을 이끌어내는 더없이 강력한 후원자로 삼을 수 있다.
“미국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다”는 그녀의 선언은 역설적으로 한국 외교가 나아갈 길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해 준다.
대사가 어느 진영 편인가를 따지거나 핏줄에 기대는 하책(下策)을 버려야 한다. 미국을 대변하러 온 까다롭고 막강한 정치인 대사를 상대로, 대한민국 역시 ‘오직 대한민국의 국익’만을 대변하는 차갑고 정교한 실리 외교로 응수해야 한다.
스틸 대사라는 중량급 카드를 우리를 위협하는 날카로운 비수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한미 현안을 뚫어내는 더없이 유용한 후원자로 반전시킬 것인가. 그 해답은 이제 이재명 정부와 우리 외교 당국의 냉정한 외교적 계산기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