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이상기 칼럼] ‘대통령 관심’보다 원칙을 택한 군 인사…이상희 장군 사례가 남긴 것

1992년 2월 4일 최승우 17사단장이 리스카시 주한미군사령관을 헬기장에서 맞이하고 있다. 최승우 소장은 사단장 보직을 마치고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군에서 인사는 곧 역사다.

누가 언제 진급했는가, 어떤 보직을 거쳤는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는 한 장교의 미래뿐 아니라 군 조직의 방향까지 좌우한다. 특히 군은 다른 조직과 다르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판단이 국가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군 인사는 단순한 승진 심사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맡길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군 인사는 단순한 순번표가 아니다. 한 번의 판단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판단은 다시 평가받기도 한다. 최근 군 원로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의 진급 과정은 군 인사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상희 전 장관은 육군사관학교 26기로 1970년 임관했다. 이후 30기계화보병사단장, 5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작전본부장, 3야전군사령관을 거쳐 합참의장에 올랐고, 전역 후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야전 지휘와 작전, 전략·정책을 두루 경험한 대표적인 군 전략가였다.

하지만 그의 군 경력이 처음부터 예정된 성공 코스였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 관심 사항”이라는 인사 요구, 최승우 인사참모부장의 고민

최승우 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육군 인사참모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이상희 대령의 장군 진급(준장)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있었다.

당시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이 청와대를 다녀온 뒤 최 장군을 불렀고,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문서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최 장군의 기억으로는 그 문서에는 이상희 대령을 진급시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최 장군은 이를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이상희 대령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수색대대장 시절부터 지켜봤고, 작전 분야에서 함께 경험하며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인사참모부장으로서 조직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고민했다. 최 장군은 당시 이상희 대령이 대령 3차 진급자였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당시 군 내부에서는 대령 진급 차수가 이후 장군 진급 경쟁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졌다.

최 장군은 “대령 3차 진급자를 장군 1차 진급자들과 함께 놓는 것은 당시 군 인사 질서상 쉽지 않은 일”이라는 취지로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이는 이상희 개인의 능력을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더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하려 했던 것이다.

최 장군은 당시 대통령 관심 사항으로 전달된 인사 문제와 관련해, 특정 인연이나 배경보다 군 인사의 원칙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고 회고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후의 결과다. 이상희 장군은 그 시점에 바로 진급하지 않았지만, 이후 다시 기회를 얻어 장군이 됐다. 최 장군은 “그때 1차로 장군 진급이 됐다면 동기생과 주변의 눈총으로 대장까지 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취지로 회고했다. 시간이 결국 사람을 평가한 셈이다.

빠른 진급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줬는가

군 인사는 단순히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구조가 아니다. 어떤 보직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 조직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보여줬는지, 상급자와 동료들이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함께 작용한다.

이상희 장군은 이후 작전과 전략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작전본부장을 거치며 군의 큰 그림을 다루는 역할을 맡았고, 3야전군사령관과 합참의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까지 올랐다.

초기의 진급 순서보다 장기간의 역량과 보직 수행이 더 큰 평가 기준이 된 사례다.

12·3 이후 다시 묻는 군 인사의 원칙

이상희 장군 사례는 오늘날 군 인사를 바라보는 데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군 지휘부와 관련 장교들을 둘러싼 조사와 징계, 인사 조치가 이어졌다.

헌정 질서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군은 국민의 군대이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군이라는 조직은 일반 행정조직과 다른 특수성을 갖는다. 군은 명령 체계와 전문성이 생명이다. 지휘관과 참모들이 끊임없이 교체되고 조직 경험이 단절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따라서 책임을 묻는 것과 조직을 안정시키는 것은 대립되는 가치가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별 역할과 책임, 실제 행위의 정도를 세밀하게 따져야 한다. 군 전체의 전문성과 안정성을 지키면서 다시 신뢰받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군이 정치적 보복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잘못을 덮는 조직이 되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원칙과 균형이다.

사람은 시간이 평가한다

최승우 장군의 회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결국 사람에 대한 판단이다. 사람은 처음 평가받은 모습 그대로 남지 않는다.

처음에는 늦어진 진급자로 보였던 사람이 훗날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이 됐다. 반대로 과거의 높은 평가가 영원한 보증서가 될 수도 없다. 군인은 순간의 평가가 아니라 긴 시간의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좋은 군 인사는 줄 세우기가 아니다. 누구를 올리고 누구를 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어떤 사람에게 어떤 책임을 맡길 것인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이상희 장군의 군 경력은 그 사실을 보여준다. 빠른 사람이 반드시 끝까지 앞서는 것은 아니다. 한 번 늦어진 사람이 반드시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군에 필요한 것도 결국 같은 질문일 것이다. “국가를 지키는 사람을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군 인사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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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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