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통령 옆으로 날아간 골프공…20년 전 카자흐스탄에서 본 권력의 품격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자일라우 골프 리조트. 천산산맥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 골프장에서 필자는 20여 년 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당시 대통령 일행과 나란히 라운딩하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 사진은 현재 골프장의 모습

최근 언론을 달구는 대통령의 골프 의전과 경호 논란을 보면 20년 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주재하던 시절 겪은 일이 떠오른다.

당시 살던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자일라우 골프 리조트(Zhailjau Golf Resort)’가 있었다. 도심 한복판, 천산산맥 자락에 들어선 골프장이었다. 한여름에도 눈 덮인 천산을 배경으로 공을 칠 수 있어 접근성과 환경 모두 으뜸이었다. 세계적인 골프선수 아널드 파머 팀이 코스를 설계해 막 개장했던 시기였는데, 도심 한가운데 최고급 골프장 허가가 난 것을 두고 “대통령 딸의 소유”라는 소문이 돌곤 했다. 막강한 권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입지와 관리 상태였다.

클럽하우스의 샌드위치가 입에 맞아 주말이면 가족과 자주 찾았고, 아내와 라운딩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다섯 살이던 딸아이도 매번 따라나섰다. 자기도 치겠다고 고집을 피워 작은 어린이용 골프채를 하나 사서 손에 쥐여주었다. 딸아이는 카트에 타고 가다 한 번씩 채를 휘두르곤 했다. 그래도 뒤에서 빨리 치라고 재촉하거나 아이를 데려왔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말 그대로 여유로운 생활체육의 공간이었다.

어느 주말, 여느 때처럼 주재원들과 골프장을 찾았을 때다. 입구부터 기관단총을 든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어 ‘오늘 대통령이 왔구나’ 싶었다. 골프장 둘레의 최고급 콘도 몇 채가 대통령 가족 소유라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골프장에 온 건지 콘도에 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라운딩을 시작하고서야 우리보다 두 팀 앞에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일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자르바예프는 30년 가까이 카자흐스탄을 다스린 권위주의 장기 집권자였다. 그런 절대권력자였음에도 대통령 일행은 앞뒤로 딱 한 홀씩만 비워둔 채 일반 이용객들과 함께 플레이했다. 물론 기관단총을 든 경호원들이 삼엄하게 밀착 경호를 하고 있었지만, 골프장 전체를 통제하거나 일반인의 이용을 막지는 않았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자일라우 골프 리조트의 클럽하우스. 필자는 20여 년 전 이곳에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일행이 일반 이용객과 같은 공간을 이용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골프장은 코스가 오가며 서로 마주치게 마련이다. 한 홀 간격을 두고 따라가던 중,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드라이버 티샷을 날렸다. 하필 그때 옆 코스에서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샷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 팀의 공은 심한 슬라이스가 나면서 대통령이 서 있던 바로 옆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주변을 경계하던 총을 든 경호원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고압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경호원은 영어로 “대통령께서 샷을 하실 때는 잠시 플레이를 중단해 주십시오”라고 정중히 부탁하고 돌아갔다. 옆 코스에 있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역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라운딩을 마친 뒤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통령 일행이라고 해서 클럽하우스를 독점하거나 통제하지 않았다. 우리 같은 일반 이용객들과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식사하며 클럽하우스를 이용했다. 강력한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하던 시절이었지만, 필드 위에서 일반 시민이나 외국인 주재원을 과도하게 통제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하던 그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자일라우 골프장은 지금도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명문 골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20년 전 독재 정권이라 불리던 나라에서도 최소한의 필드 매너와 시민에 대한 배려를 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민주주의 국가라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대통령의 골프 의전과 과잉 경호 논란은 씁쓸함을 남긴다. 우리 정치 문화와 권력의 의전은 20년 전 카자흐스탄보다 나아졌는가, 아니면 여전히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20년 전 천산 자락 자일라우에서 본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손짓과 클럽하우스의 여유로운 풍경이 자꾸만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옆 코스의 일반 시민을 향해 쿨하게 손을 흔들어주는 대통령의 모습을 필드 위에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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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지역장 전무, 삼성SDI 마케팅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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