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칼럼

[황건의 나고야 산책]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최신원 대한펜싱협회장이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경기를 지켜본 뒤 선수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경기 직후 선수들과 협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나는 의학교육을 하면서 되먹임(feedback)을 줄 때 이른바 ‘샌드위치 기법’을 배운 적이 있다. 먼저 잘한 점을 이야기하고, 그다음 고쳐야 할 점을 짚은 뒤, 마지막에는 다시 잘한 점을 찾아 격려하는 방식이다. 상대가 방어적으로 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배웠다.

스포츠에서도 이런 방법을 사용할까. 나고야에서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경기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한국은 카자흐스탄을 크게 이겼다. 경기 내용도 좋았다. 다만 몇 차례 패스미스가 있었고 골키퍼가 아쉽게 슛을 놓친 장면도 있었다. 아무리 잘한 경기에도 돌아보면 아쉬운 대목은 있기 마련이다.

이날 경기 후 최신원 대한펜싱협회장이 그날 펜싱 경기를 관람한 뒤 핸드볼 경기장까지 찾아와 선수들을 만나 응원하고 격려했다.

경기를 마치고 나서 나는 협회 임원들의 뒤를 따라갔다. 출구 가까운 곳에 감독과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잠시 후 고운 백발의 최신원 회장이 수행원들과 함께 걸어왔다. 나보다 네 살 위라고 했다.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선수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관심이 묻어났다.

그는 경기를 꽤 주의 깊게 본 모양이었다. 우선 승리를 축하하고 칭찬한 다음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경기 중 있었던 장면을 이야기했다. 패스미스를 했던 선수에게는 그 장면을 짚어주었고, 때로는 자신의 종목인 펜싱에 빗대어 설명했다. 골키퍼가 놓친 슛도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활약이 좋았던 선수에게는 금일봉도 건넸다. 핸드볼 선수가 아닌데도 경기를 그만큼 세세히 지켜봤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선수들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고 임원들도 그 자리를 세심하게 챙기고 있었다. 승리 직후의 들뜬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긴장감도 느껴졌다.

그 장면을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경기 내용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선수들에게 말을 건네는 열정이 대단했다. 바쁜 일정 가운데 다른 종목 경기장까지 찾아와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의학교육에서 배웠던 ‘되먹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실제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좋은 되먹임은 잘못을 찾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잘했는지 확인하고, 무엇을 고치면 더 좋아질지를 이야기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과정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샌드위치 기법의 순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말하는가. 언제 말하는가. 어떤 관계에서 말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말하는 사람의 뜻과 듣는 사람의 느낌은 언제나 같지는 않다. 관심에서 건넨 조언도 어떤 자리에서는 격려로 들리고, 어떤 자리에서는 평가로 느껴질 수 있다. 코치가 훈련 중 하는 말과 경기 직후 팀 밖의 누군가가 건네는 말도 받아들여지는 결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어느 방식이 맞고 어느 방식이 틀렸다고 단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는 어떠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나 역시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이 상대에게는 부담이 된 적이 없었을까. 내가 격려라고 생각했던 말이 상대에게는 평가로 들린 적은 없었을까.

나는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팀닥터로 이곳에 와 있다. 경기 중 혹시 우리 선수들이 다치지 않을까 지켜보고, 경기가 끝나면 임원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온다. 그래서였는지 경기장 출구에서 본 짧은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몇 해 전 해외 경기에서 패한 우리 축구 선수들의 라커룸을 대통령이 찾아가 격려했던 장면도 떠올랐다. 두 장면 모두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경기 후 선수들에게 다가간 모습이었다. 상황도 달랐고, 말을 건네는 방식도 달랐다.

나는 어느 쪽이 더 좋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난 한 장면만으로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두 장면을 떠올리다 보니 한 가지 질문이 오래 남았다.

참된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직위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말을 듣는 사람이 어느 순간 “이 사람은 나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를 위해 말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일까.

그리고 격려란 무엇일까.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일 수도 있고, 아쉬웠던 점을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격려의 가장 깊은 모습은 조금 더 조용한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 보았다. 그리고 네가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 의학교육에서 배운 되먹임을 떠올리다 보니, 나는 경기장에서 오히려 되먹임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신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뜻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 좋은 뜻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샌드위치의 빵과 빵 사이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그 샌드위치를 건네는 손과 받아드는 사람 사이에 어떤 신뢰가 놓여 있는가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고야에서 경기를 보고 돌아온 그 밤, 나는 최신원 회장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건네고 있는가. 내 진심은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지고 있는가.

그 생각을 오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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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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