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인 1960년대 초중반, 거리에서 상이군인들을 자주 보았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사람도 있었고, 목발을 짚은 사람도 있었다. 생활이 어려워 구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거칠게 항의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이들도 있었다. 어린 눈에는 낯설고 때로는 두렵게 보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들이 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6·25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군대에서는 전투 중 사상자를 KIA(Killed in Action)와 WIA(Wounded in Action)로 구분한다. 전사자와 전상자다. 전자는 전투 중 목숨을 잃은 사람이고, 후자는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사람이다. 물론 WIA라고 해서 모두 무사히 회복하는 것은 아니다.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치료와 재활,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전사자는 추모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살아 돌아온 전상자는 누가 돌보는가?
최근 영화 《두 검사》(Two Prosecutors)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한 상이군인이 기차에 등장한다. 그는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려 한다.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사람이 국가에 도움을 청하러 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마주하는 것은 개인의 호소가 쉽게 닿지 않는 거대한 권력과 관료주의의 벽이다.
이 장면은 다른 영화의 한 장면과도 겹쳐 보였다. 《The Heart of the Beast》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제임스 벨몬트의 곁에는 군견 오딘이 있다. 오딘은 전쟁에서 치아와 오른쪽 앞다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앞다리에는 인공 보철물을, 치아에는 티타늄 보철물을 하고 있다. 전쟁의 흔적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에는 금광에서 일하던 노인이 오딘의 티타늄을 보고 은으로 착각하는 장면도 나온다. 평생 금을 캐던 사람에게 은은 익숙한 귀금속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딘에게 티타늄은 장신구가 아니다. 다시 걷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몸의 일부다.
두 영화의 시대와 사회는 다르다. 하나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군인과 군견을 다룬 이야기다. 두 장면을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로 읽을 수도 있겠다. 국가의 약속이 개인에게 실제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 전쟁에서 희생한 존재를 사회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 체제는 언제나 상이군인을 돌보고 다른 체제는 외면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민주국가에도 돌봄의 사각지대가 있고, 어떤 사회든 제도와 현실 사이에는 간격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체제의 이름보다 국가와 사회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사람의 남은 삶을 얼마나 책임지는가 하는 점이다.
군견도 예외가 아니다. 군견은 임무 수행 능력을 잃었다고 해서 당연히 안락사시키는 존재가 아니다.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고, 더 이상 현역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면 퇴역하여 새로운 보호자를 만날 수도 있다. 함께 임무를 수행한 핸들러가 입양하는 길도 있다. 군견 역시 전쟁의 소모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이며, 전우이기 때문이다.
오딘의 티타늄 보철은 전쟁의 상처를 지우지는 못한다. 다만 상처를 입은 뒤에도 삶이 계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뒤에도 걸을 수 있어야 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하며,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KIA는 전쟁터에서 생을 마친 사람을 가리킨다. WIA는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는 전사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전상자의 남은 생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고 돌보는지는 자주 잊는다.
어린 시절 거리에서 보았던 상이군인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들의 이름과 사연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때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전쟁이 끝난 뒤 그들에게 어떤 삶이 주어졌는지 이제야 생각하게 된다.
전쟁터에서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난 뒤에는 누가 그들의 남은 삶을 책임지는가?
오딘은 티타늄 의족을 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