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서부전선 이상 없다’…한 사람의 우주가 사라졌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라 했다…그 우주는 누구에게나 소중한가

안개 깔린 전선에 홀로 쓰러진 병사 한 명. 전황 보고에는 ‘이상 없음’이라고 기록될지 몰라도, 그 한 사람의 죽음은 한 가족의 세계이자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AI 생성 이미지)

이재명 대통령의 유튜브 방송 ‘대통령의 Y’ 첫 회를 보았다. 대통령은 가장 안타까운 일로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국민이 생명을 잃는 일을 들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가의 여러 지표가 좋아지더라도 예방할 수 있었던 죽음이 반복된다면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는 취지였다.

특히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동반자살’이라고 부르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자녀는 부모와 별개의 독립된 생명이며, 그런 사건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자녀에 대한 살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자녀의 생명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사람의 목숨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우주와 같으며, 그 우주가 사라져 갈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방송 마지막에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대사를 낭독했다.

참 아름다운 말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하나의 우주에 비유하는 표현에는 특별한 울림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억과 사랑, 가족과 꿈을 품고 살아간다.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단순히 한 명의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속해 있던 하나의 세계가 함께 사라진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문득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떠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 젊은 독일 병사 파울 보이머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다. 어느 날 그는 프랑스 병사와 싸우다가 상대를 죽이게 된다. 그러나 죽어가는 적군을 바라보면서 그가 단순한 적군이 아니라 자신처럼 살아온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돌아갈 집이 있었으며, 살아갈 내일이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은 더욱 서늘하다. 1918년 10월, 파울 보이머가 전사한 날은 전선이 유난히 조용했다. 그날의 공식 보고에는 단 한 줄이 남았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전쟁을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이 없었을지 모른다. 전선은 유지되었고, 작전에도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죽은 병사에게는 모든 것이 끝났다. 그에게는 더 이상 내일도, 가족도, 사랑도 없었다. 한 사람의 우주가 완전히 꺼진 것이다.

전쟁의 기록은 숫자로 남는다. 전사자 몇 명, 부상자 몇 명, 실종자 몇 명. 그러나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각기 다른 삶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남편의 빈자리를 안고 살아간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하나의 증례로 기록하고, 통계에서는 한 명의 사망자로 집계한다. 그러나 의사에게 환자는 단순한 증례가 아니다. 그에게는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과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 수술실에서 우리가 지키려 애쓰는 것은 단순히 심장 박동만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남아 있는 삶의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라는 말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할까?

생명의 존엄을 말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말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낯선 사람의 생명도, 자신에게 유리한 사람뿐 아니라 불편한 사람의 생명도 똑같이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특히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 여러 정치적 사건과 수사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난 일도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남겼다. 각각의 죽음에는 서로 다른 경위와 사정이 있을 것이며, 책임을 말하려면 사실관계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과 별개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자신만의 삶을 살았던 하나의 우주였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말이 진심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말이 정치적 입장이나 인간관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보편적인 생명 존중의 원칙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것은 대통령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의사와 군 지휘관, 정치인과 언론인,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마지막 독백은 지나간 날의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날의 불안 때문에 오늘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금 살아 있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는 말이다.

한 사람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전선에는 이상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전선에서 죽은 병사에게는 더 이상 내일이 없었다.

한 사람의 우주가 사라지는 일을 이상 없는 일로 기록하지 않는 것. 생명의 존엄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그것을 증명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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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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