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칼럼

군인은 군인답게…모델워킹과 군인의 품격

2026년 10월 29일 육군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진행된 모델워킹 교육. 장병들이 패션모델의 걸음걸이와 동작을 배우고 있다. 군인의 자세와 품격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사진=TV조선 보도화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을 때 유명 브랜드가 주최하는 패션쇼를 구경한 적이 있다. 모델들은 옷을 바꾸어 입고 나왔고, 손에 든 가방도 달라졌다. 여성 모델뿐 아니라 남성 모델들도 멋졌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자신이 입은 옷과 소품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걸음걸이를 보여주었다. 모델에게 걷는 일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직업이자 표현이었다.

그런데 최근 특전사 장병들에게 패션모델의 워킹을 가르쳤다는 보도를 접했다. 모델들을 초빙해 걷는 법과 방향을 바꾸는 동작, 포즈 등을 교육했다고 한다. 장병들의 자세와 자신감을 높이려는 취지였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좋은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특전사 장병들에게 과연 모델워킹이 필요했을까?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교련을 받을 때, 그리고 군에서 훈련을 받을 때 제식훈련을 경험했다. 발을 맞추고 보폭을 맞추며 대열을 유지하는 훈련이었다. 국군의 날 열병식에서 볼 수 있는 씩씩하고 절도 있는 걸음걸이다. 그 걸음에는 개인의 멋보다 집단의 질서와 단결이 담겨 있었다.

모델은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걷는다. 군인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임무를 위해 걷는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목적이 다르면 걸음걸이도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지 않도록 어머니가 여장을 시켜 스키로스섬 왕궁에 숨겼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무기와 장신구를 함께 내놓자 무기를 집어 들면서 정체가 드러났다. 한편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여성용 옷과 장신구를 보내 출전을 종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마의는 그 조롱에 흔들리지 않았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도발에 발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전략을 지키는 일이었다.

두 이야기는 시대와 배경이 다르지만, 여성의 옷이 남성 전사에 대한 조롱이나 도발의 수단으로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오늘날 여성의 옷을 입거나 모델워킹을 배우는 일이 남성의 강인함을 훼손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어떤 교육의 이름으로 가르치느냐에 있다.

군인에게도 부드러움과 세련된 품격은 필요하다. 강인함이 거칠고 무례한 태도를 뜻하지는 않는다. 군인의 품격은 근육의 크기나 목소리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긴 행군에도 대열을 지키고, 지친 전우의 짐을 나누어 지며, 위험한 순간에 자기 자리를 지키는 데서 나온다.

우리가 군가를 부르며 행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혼자라면 지쳐 멈추었을 길도 함께 노래하며 걸으면 다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군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전우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특전사만 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무병은 부상자를 구해야 하고, 취사병은 전우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하며, 행정병은 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병과와 보직은 달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군인다운 책임과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공자는 정치의 도리를 묻는 제나라 경공에게 이렇게 답했다.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사회의 질서도 바로 선다는 이야기다.

2026년 3월 18일 특전사 출신 예비군들의 한미연합훈련 연계 훈련 사진 <연합뉴스>

이 말을 오늘날 군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군인은 군인답게, 교육자는 교육자답게, 지휘관은 지휘관답게 해야 한다. 군인을 교육하는 사람에게는 군인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이해할 책임이 있다.

이번 행사가 군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도 없다. 다만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내용은 교육받는 사람의 임무와 조직의 특성에 맞아야 한다.

군의 사기를 높이고 장병들의 자존감을 키우려는 노력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군의 본래 임무와 정신을 더 잘 이해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모델은 모델답게, 군인은 군인답게. 서로의 직업과 역할을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군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대 위의 걸음걸이가 아니다. 전우와 함께 걷고, 어려운 순간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군인의 걸음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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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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