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We, 함께 견디는 사람들…전우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훈련을 마친 병사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전투·작전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은 개인의 강인함만이 아니라 동료의식과 결속, 곧 ‘We’에서 나온다. <이미지 AI 생성>

군진의학회에서 정신과 과장의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전투 및 작전 스트레스였다. PTE(potentially traumatic event, 잠재적 외상 사건)라는 말이 나왔고, COSR(combat and operational stress reaction, 전투 및 작전 스트레스 반응), COSB(combat and operational stress behaviors, 전투 및 작전 스트레스 행동), COSC(combat and operational stress control, 전투 및 작전 스트레스 조절)라는 용어가 이어졌다.

전투와 작전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불안이나 불면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평소와 다른 행동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조기에 알아차리고 서로 살피며 필요한 도움을 주어 개인과 부대가 다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COSC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강의 중 한 단어에서 나는 잠시 귀를 기울였다. Esprit de corps. 프랑스어였다. 부대정신, 동료의식, 결속 같은 뜻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케네스 브래너가 헨리 5세를 연기한 영화였다. 비가 내린 뒤 진흙으로 변한 전장. 영국군 앞에는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프랑스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1415년 아쟁쿠르였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는 전투를 앞둔 병사들에게 말한다.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우리는 소수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 소수다. 우리는 형제처럼 결속된 사람들이다.

그동안 나는 이 문장을 전쟁영화의 인상적인 대사쯤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esprit de corps라는 말을 듣고 나니 조금 다르게 들렸다.

전투에서 사람을 버티게 하는 힘은 개인의 용기만은 아닐 것이다. 옆에 누가 있는가.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사람이 있는가. 내가 두려워할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가. 어쩌면 We라는 말은 그런 관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535년 뒤, 또 다른 전쟁에서 비슷한 말이 나왔다. 1950년 한국전쟁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부산 교두보 전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미 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장군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뜻의 강한 명령을 내렸다. “Stand or Die.”

그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표현은 이렇다. “We will fight as a team.” 한 팀으로 싸우겠다는 말이다.

아쟁쿠르의 헨리 5세와 한국전쟁의 워커 장군 사이에는 535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다. 나라도, 전쟁도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병사들에게 건넨 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I가 아니라 We였다.

다부동을 생각한다. 1950년 8월, 대구를 지키기 위해 한국군과 미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그곳의 병사들에게 전쟁은 지도 위의 화살표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옆에서 함께 버티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과 함께 밤을 견디고 다음 날을 맞아야 했다. 전우애는 아마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오늘의 군대에도 가져와 본다. 지금의 병영생활이 전쟁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운 순간은 찾아올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반드시 특별한 영웅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바로 옆의 한 사람일 것이다. 같이 식사하는 사람, 같은 생활관에서 잠드는 사람, 훈련을 함께 받는 사람, 말없이 내 표정을 한 번 살펴주는 사람.

그런 작은 관계가 쌓이면 나와 너 사이에 ‘우리’라는 말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 우리는 스트레스가 닥쳤을 때 사람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COSC가 스트레스에 대한 개인의 반응을 관리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그 끝에는 개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대가 함께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esprit de corps가 중요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의사로서 군인들의 몸을 치료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강의를 들으며 조금 다른 생각도 하게 되었다. 병영에서 전우애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전우애라는 말을 반복한다고 전우애가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전우애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는 병영을 만드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서로의 이름을 알고, 어려움을 조금 살피고, 힘든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분위기.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나와 너 사이에 We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옆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아쟁쿠르의 병사들도, 낙동강의 병사들도, 다부동의 병사들도 처음부터 서로를 형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걷고, 함께 기다리고, 함께 두려워하고, 함께 견디면서 어느 순간 We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 군진의학회에서 들은 프랑스어 한마디가 오래된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불러냈다. Esprit de corps.

그리고 그 말은 다시 한 단어로 돌아왔다. We.

나는 그 말을 병사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젊은 군인들이 생활하는 병영 안에, 언젠가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서로의 옆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것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오늘의 군대에서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We. 함께 견디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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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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