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IT-과학

[전동휠체어에 날개를 달고] “여보, 나 합격했어”…사지마비 내가 미국 운전면허 따기까지 4년 반

김종배 교수가 미국 유학 4년 반 만에 취득한 생애 첫 운전면허증. 중증장애를 딛고 직접 운전할 수 있게 된 순간은 그에게 특별한 감격이었다. 개인정보는 비식별 처리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아시아엔=김종배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 사지마비인 내가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데 4년 반이 걸렸다. 수동휠체어조차 스스로 밀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가는 것부터 남의 도움이 필요했던 내가 직접 자동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기까지는 10단계의 긴 과정이 필요했다.

첫 단계는 주치의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재활의학과 외래진료를 신청해 “나도 운전을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주치의는 내 몸 상태를 살핀 뒤 운전재활전문가의 평가를 받아보라며 처방전을 써주었다.

두 번째는 운전능력 평가였다. 교외에 있는 사우스힐스 재활병원 운전평가실에서 기본 평가를 받았다. 담당 전문가는 내가 운전면허 취득에 도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펜실베이니아주 직업재활국(OVR·Office of Vocational Rehabilitation)에 의뢰했다. 그렇게 나는 미국 직업재활제도의 지원 대상자가 됐다.

세 번째는 운전허가증(Driving Permit)이었다. 실제 운전훈련을 받으려면 먼저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이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 번에 합격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네 번째 단계에서 OVR은 내게 맞는 운전보조기기를 찾기 위해 필라델피아의 재활병원으로 나를 보냈다. 나와 아내의 항공료와 호텔비, 식비까지 OVR이 부담했다. 그곳에서 핸들을 돌리는 스피너 보조기와 손으로 가속과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핸드컨트롤 등 여러 장치를 하나씩 시험했다. 운전재활전문가는 몇 가지 후보 장치를 골랐다. 내가 휠체어에 앉은 채 운전할 수 있도록 특수 밴을 세팅해 3주 뒤 피츠버그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다섯 번째 단계, 드디어 ‘첫 운전’이었다. 전문가는 필라델피아에서 특수 밴을 몰고 피츠버그까지 왔다. 피츠버그 스틸러스 미식축구 경기장 옆 넓은 주차장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휠체어를 운전석 공간에 진입시켜 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왼손은 가속·브레이크를 조작하는 장치에 끼우고, 오른손은 스티어링휠에 달린 특수 손잡이에 넣었다. 차가 움직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진하다 우회전을 하면 왼손이 가속·브레이크 장치에서 자꾸 빠졌다. 여러 차례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운전 중 손이 장치에서 빠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운전재활전문가는 한참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 시스템으로는 운전이 어렵겠습니다.” 그는 그날 장비를 챙겨 필라델피아로 돌아갔다. 오~오~ 낙심! 그러고도 1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OVR의 내 케이스매니저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기계식 장치가 아니라 모든 조작을 전자적으로 제어하는 차량에 도전해보자고 했다.

휠체어 이용자의 승하차를 위해 경사로가 설치된 장애인 이동지원 차량. 차량 내부를 개조해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사진=방송영상 캡처/김종배 제공

여섯 번째 단계는 존스타운의 브랜트 드라이빙 스쿨이었다. 이곳은 펜실베이니아주 직업재활센터인 하이럼 G. 앤드류 센터와 협력해 장애인을 위한 운전재활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당시 펜실베이니아에서 완전 전자제어 방식의 운전교육 차량을 갖춘 드문 기관이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두 시간쯤 달려가 다시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순서를 기다리기로 했다.

몇 달 뒤 OVR에서 전화가 왔다. 뜻밖의 소식이었다. 내 앞에서 교육받던 사람이 도로주행 중 가로수를 들이받아 교육차량의 전자제어 시스템이 크게 망가졌다는 것이었다. 새 차량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미국에 온 지 거의 3년이 지나갔다. 그래도 지구는 돌았다. 또 1년쯤 지나 새 차가 마련됐고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주 5일씩 2주 동안 하이럼 G. 앤드류 센터 기숙사에 머물며 운전교육을 받았다.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내가 전자제어 장치를 이용해 자동차를 몰고 실제 도로를 달렸다. 꿈만 같았다.

김종배 교수가 특수 운전 보조장치를 이용해 차량을 조작하고 있다. 손의 움직임이 제한된 중증장애인도 맞춤형 조향·가속·제동 장치를 통해 직접 운전할 수 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일곱 번째 단계는 운전면허 시험이었다. 교육 마지막 날인 금요일, 평소의 교육관 대신 면허시험 심사관이 내 옆자리에 탔다. 도로주행을 무사히 마쳤다. 마지막으로 후진해 차를 세우는 평행주차까지 성공했다. 합격. 그 자리에서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나는 곧바로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나 합격했어!”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KAIST에 합격했을 때도 하지 않았던 ‘합격 세리머니 전화’를 했다. 수동휠체어조차 혼자 밀지 못해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던 내가 운전자가 된 것이다. 미국에 온 지 4년 반 만이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면허증이 있다고 바로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종배 교수가 국내에서 운전하고 있는 휠체어 탑승용 특수 개조 차량. 운전은 그에게 이동의 자유뿐 아니라 남편과 아빠로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되찾아줬다. 사진=김종배 제공

여덟 번째 단계는 ‘내 차’를 만드는 일이었다. 토요타 시에나 미니밴을 구입해 장애인 차량 전문 개조업체에 맡겼다. 교육받을 때 사용한 차량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먼저 1열과 2열 좌석을 들어내고 차 바닥을 약 27cm 낮췄다. 그래야 휠체어에 탄 채 운전석으로 들어갔을 때 내 눈높이가 정상적인 운전 시야와 맞았다. 핸들과 가속·브레이크는 전자식으로 제어하도록 했다. 방향지시등과 와이퍼 등 각종 보조장치, 전동 경사로, 휠체어 고정장치까지 모두 전자식으로 작동하게 했다. 나에게 자동차는 단순히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차 전체를 내 몸에 맞춰 다시 만들어야 했다.

아홉 번째는 정밀 조정이었다. 공장에 직접 가서 핸들과 가속·브레이크 조종장치, 휠체어 고정장치, 각종 보조 스위치의 위치를 하나씩 맞췄다. 몇 센티미터의 차이도 내게는 편안함과 위험을 가르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마침내 차를 인수했다. 그런데 마지막 한 단계가 남아 있었다.

열 번째는 ‘딜리버리 서비스(Delivery Service)’였다. 여기서 딜리버리는 짜장면 배달처럼 차를 집 앞까지 가져다준다는 뜻이 아니다. 나를 교육했던 브랜트 드라이빙 스쿨의 운전재활전문가가 직접 피츠버그로 와서 3일 동안 내 자동차를 점검했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 내가 실제 생활권에서 제대로 운전하는지 살폈다. 운전보조장치가 내 몸에 맞는지, 제대로 작동하는지, 운전하면서 불편하거나 위험한 부분은 없는지 하나씩 확인했다. 일반 도로뿐 아니라 고속도로 주행까지 지켜봤다. 모든 점검을 마친 뒤 그가 떠났다.

김종배 교수가 미국에서 운전교육을 받은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의 하이럼 G. 앤드류 센터(Hiram G. Andrews Center). 김 교수는 이곳에서 2주간 완전 전자제어 차량을 이용한 운전교육을 받은 뒤 도로주행시험에 합격했다. 사진=펜실베이니아주 노동산업부 영상 캡처/김종배 제공 출처

끝! 이제는 정말 내가 드라이버다.

돌아보면 내가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얻은 과정은 단순히 시험에 합격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의사의 평가에서 시작해 운전재활전문가, 직업재활국, 운전학교, 차량개조업체가 차례로 연결됐다. 첫 장비로 운전에 실패했을 때는 다른 기술을 찾았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다시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내가 운전할 수 있게 된 것은 장애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내 몸에 맞는 기술을 찾고, 그 기술을 훈련하고, 제도가 그 과정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와 제도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내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출발할 수 있게 해준 또 하나의 ‘날개’였다. 미국에서 4년 반을 기다려 얻은 운전면허증 한 장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그것이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때로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직접 움직일 수 있도록 끝까지 방법을 찾아주는 일이다.

미국 피츠버그 HERL에서 호르헤 교수(가운데), 박상미 박사(왼쪽)와 연구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박상미 박사는 김 교수의 이번 HERL 방문에서 연구진과의 미팅과 현지 일정을 지원했다. 사진=김종배 교수 제공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
AI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