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T-과학미디어

‘과오돌연변이’ 대신 ‘치환돌연변이’?…첨단의학 우리말 용어 다시 세운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9월 16일 오후 3시 제76회 의학용어 원탁토론회를 온라인 Zoom과 서울 중구 의학한림원 사무처에서 연다. 이번 주제는 ‘분자표적기반 의학용어: 우리말 용어 공백과 명명 문제’다. 이미지는 지난 7월 열린 제75회 원탁토론회 포스터

대한민국의학한림원 16일 제76회 의학용어 원탁토론회
이호창 교수, 분자표적기반 32개 용어 신설·개정 제안
김선혜 “대표형·허용형 함께 관리”…이경종 “진료현장 개념 위계 중요”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암 진단과 표적치료·면역치료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새로 등장하는 의학 개념을 우리말로 어떻게 부를 것인가. 의료현장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지만 의학용어집에는 없거나, 기존 번역어가 실제 개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용어들을 다시 점검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9월 16일 오후 3시 제76회 의학용어 원탁토론회를 온라인 Zoom과 서울 중구 의학한림원 사무처에서 연다. 이번 주제는 ‘분자표적기반 의학용어: 우리말 용어 공백과 명명 문제’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원장 한상원)은 2004년 창립된 의학 및 의학 관련 분야 석학단체로, 의학 발전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연구·교육·보건의료정책 자문과 학술활동을 수행한다. 2016년 의료법에 명시된 법정단체가 됐으며 간호학·약학·치의학·수의학·기초과학 등으로 참여 분야를 넓혀왔다.

발제를 맡은 이호창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병리과 교수는 암 진단과 치료의 발전 속도에 우리말 의학용어 정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표적요법과 면역요법, 분자병리검사 분야에서 새로운 용어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으나 상당수가 의학용어집에 등재되지 않아 연구자와 의사들이 임의로 번역하거나 영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모두 32개 용어의 신설 또는 개정을 제안했다.

대표적인 것이 돌연변이 관련 용어다. missense mutation을 현재의 ‘과오돌연변이’ 대신 ‘치환돌연변이’로, nonsense mutation의 ‘무의미돌연변이’를 ‘번역중단돌연변이’ 또는 ‘중단돌연변이’로 바꾸고, 의학용어집에 없는 silent mutation은 ‘침묵돌연변이’로 등재하자는 제안이다. ‘과오’나 ‘무의미’라는 일반적인 말뜻이 실제 유전학적 변화와 어긋나거나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이유다.

최근 연구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transcriptome과 transcriptomics에는 각각 ‘전사체’와 ‘전사체학’을 제안했다. exome과 exomics는 용어체계상 ‘엑손체·엑손체학’이 가능하지만 실제 국내 연구에서는 ‘엑솜·엑솜학’이 널리 쓰이고 있어 어느 쪽을 대표 용어로 삼을지도 토론 대상이다. microRNA는 ‘미세RNA’, small interfering RNA는 ‘작은간섭RNA’, self-amplifying RNA는 ‘자기증폭RNA’ 등이 제시됐다. complementary DNA(cDNA)는 ‘상보DNA’와 ‘역전사DNA’를 놓고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임상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지만 정리가 필요한 항암 관련 용어도 다수 포함됐다. homologous recombination deficiency(HRD)는 ‘상동재조합결핍’, tumor mutational burden(TMB)은 ‘종양돌연변이부하’, tumor-infiltrating lymphocyte(TIL)는 ‘종양침윤림프구’, antibody-drug conjugate(ADC)는 ‘항체약물접합체’로 제안됐다. immune checkpoint inhibitor(ICI)는 영어식 ‘면역체크포인트억제제’보다 ‘면역관문억제제’가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지정토론자인 김선혜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연구교수는 개별 용어를 무엇으로 바꿀 것인가보다 앞으로 새 의학용어를 어떤 원칙으로 만들고 관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김 연구교수는 좋은 의학용어의 기준으로 개념의 정확성, 의미의 투명성, 체계적 일관성, 실제 사용성, 형태적 경제성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거나 가장 순화된 표현, 또는 가장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만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 연구교수는 특히 번역어와 영어 음차어 가운데 하나만 남기기보다 ‘대표형-허용형’ 체계로 관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공식 문서와 교육에서는 ‘면역관문억제제’를 대표형으로 쓰되, 현장에서 사용되는 ‘면역체크포인트억제제’나 ‘ICI’를 허용형·검색 동의어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표준화가 실제 쓰이는 표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여러 표현을 하나의 개념 아래 체계적으로 묶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취지다.

사용 빈도만으로 표준용어를 정하는 것도 경계했다. 논문과 특허, 진료지침, 교육자료, 환자 설명자료에서 어떤 표현이 쓰이는지와 최근 5~10년간의 변화, 전문가 집단의 선호, 실제 문맥에서의 의미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직접 설명하는 용어라면 일반인의 이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또 다른 지정토론자인 이경종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암 진료현장을 중심으로 용어 혼란의 실태를 짚었다. 같은 상황을 놓고 ‘EGFR 변이’와 ‘EGFR 돌연변이’가 함께 쓰이고, ALK는 ‘양성·전위·재배열·융합’, 검사법은 ‘NGS 검사·패널검사·차세대염기서열분석’ 등으로 제각각 불린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용어 공백이 임상 현장에서는 이미 용어 혼란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호창 교수의 제안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missense mutation을 단순히 ‘치환돌연변이’로 바꾸는 데는 신중한 의견을 냈다. ‘치환’은 이미 substitution이라는 상위 개념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어 missense mutation 하나에 적용하면 개념의 위계가 뒤섞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아미노산치환돌연변이’를 정식 용어로 사용하거나 missense·nonsense·silent mutation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함께 명명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번역중단돌연변이’와 ‘침묵돌연변이’에는 동의했다.

임상에서 시급한 추가 용어도 제시했다. PD-L1 판독에 사용되는 tumor proportion score(TPS)는 ‘종양비율점수’, combined positive score(CPS)는 ‘복합양성점수’로 명명하자는 의견이다. ‘다유전자패널검사’, ‘이중특이항체’ 등 최근 진료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도 등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변이’라는 하나의 우리말로 alteration, mutation, variant 등이 혼용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alteration은 ‘유전자변화’, mutation은 ‘돌연변이’, variant는 ‘변이형’, gene fusion은 ‘유전자융합’, rearrangement는 ‘유전자재배열’, amplification은 ‘증폭’으로 구별해 개념의 층위를 명확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원탁토론의 쟁점은 결국 세 갈래로 모인다. 첨단의학에서 계속 생겨나는 새 개념에 어떤 우리말 이름을 붙일 것인가, 이미 의료현장에 정착한 영어식 표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의사와 연구자뿐 아니라 환자에게도 정확하게 전달되는 의학용어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다.

이호창 교수가 ‘용어 공백’을 찾아 구체적인 명칭을 제안했다면 김선혜 연구교수는 앞으로의 ‘명명 원칙과 관리체계’를 제시했다. 이경종 교수는 이를 실제 폐암 진료현장에 대입해 어떤 용어가 정확하게 작동하는지를 검증하고 보완했다.

이날 세 사람의 발표와 토론은 결국 빠르게 발전하는 의학과 이를 담아내야 하는 우리말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
AI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