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박 문제 예방 강사 양성 과정에 다녀왔다. 도박이라고 하면 카지노나 경마, 온라인 불법도박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강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의 합법 사행산업 규모가 연간 20조 원에 이르고, 불법도박은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추정된다고 했다. 또 2024년 도박중독 유병률(PGSI 기준)이 5.1%라는 설명도 들었다.
숫자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합법 사행산업과 불법도박이 한 뿌리에서 자란 두 나무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나는 햇빛 아래에서 자라고, 다른 하나는 그늘에서 자란다. 하나에는 ‘합법’이라는 이름표가 붙고, 다른 하나에는 ‘불법’이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그러나 땅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사는 주식 이야기도 했다. 주식 자체를 도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선물·옵션에 마진을 붙이고 레버리지를 2배, 5배씩 높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강사는 정신과 레지던트인 자신의 아들도 레버리지 투자로 손실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강의를 들으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의사라고 해서 자신의 욕망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면서도 때로는 위험한 선택을 한다. 지식이 언제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강사의 이야기는 여기서 더 깊어졌다. 그는 지금은 보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면서 <나 혼자 산다> 이야기를 꺼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 기분에 따라 골라 타는 자동차,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해외여행. 그런 장면을 보다 보면 ‘이곳은 돈이 있으면 살기 좋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도박으로 돈을 따본 사람도 비슷하다. 처음 딴 돈으로 명품 티셔츠를 사고, 어머니에게 임플란트를 해드린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때 도박으로 딴 돈은 더 이상 단순한 돈이 아니다. 자존감이 된다. 돈으로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돈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를 산 것이다. 그래서 도박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진다.
한 학생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 키 165cm에 몸무게 90kg.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5년 동안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런 학생이 도박으로 300만 원을 땄다. 5만 원짜리 지폐로 바꾸어 반 친구 17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날부터 따돌림에서 벗어났다. 얼마나 기뻤을까.
아이에게 300만 원은 300만 원이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였다. 부모도 아이가 달라진 것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용돈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그 용돈을 다시 도박의 밑천으로 삼았다. 그리고 결국 8,600만 원을 잃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이보다 먼저 그 부모를 생각했다. 자녀가 돈을 잃은 것도 견디기 힘들겠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책하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얼마나 힘들까. 그런데 이 아이에게 “다시는 도박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이에게 도박은 돈을 버는 방법이었지만, 동시에 친구를 얻는 방법이었고, 인정받는 방법이었으며, 자존감을 얻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치유란 도박을 끊게 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도박 없이도 친구를 만들 수 있고, 도박 없이도 인정받을 수 있고, 도박 없이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도 치유의 일부일 것이다.
그날 교육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청소년기에 도박을 시작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군에 입대하면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군 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 부채가 생기고, 돈을 빌리고, 거짓말을 하고, 동료와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래서 군에서도 예방이 필요하다.
50명 가까운 교육생 가운데 의사는 나 하나였다. 처음에는 조금 의외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나씩 들을수록 내가 왜 이 자리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마지막에 강사가 들려준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자녀가 도박 빚을 부모에게 고백하려 한다면 집보다는 스타벅스처럼 사람이 있는 카페가 좋다고 했다. 집에서는 놀람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지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서로 감정을 조금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가 어렵게 입을 열어 “나, 도박으로 빚을 졌어”라고 말했을 때 부모가 처음 해야 할 말도 알려주었다. “야, 이 미친놈아”가 아니라 “솔직하게 말해주어 고맙다.” 그 말을 먼저 하라는 것이다. 빚을 어떻게 갚을지는 그다음 문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다시 입을 닫지 않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도박의 가장 무서운 점은 돈을 잃게 한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숨게 만든다. 그리고 혼자 숨은 사람은 다시 도박으로 돌아가기 쉽다. 그래서 어쩌면 도박 문제 예방은 도박이라는 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 나무가 자라난 뿌리인지도 모른다.
돈이 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 돈이 있으면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 돈이 있으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
합법 사행산업과 불법도박, 그리고 도박처럼 변해가는 고위험 투자까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같은 토양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뿌리에서 자란 두 나무. 하나는 햇빛 아래 있고, 하나는 그늘에 있다. 우리는 그늘에 있는 나무만 잘라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뿌리는 땅속에 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예방의 시작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