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붉은 학위복에 담긴 나의 시간…”수의 걱정을 덜었다”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どうすればよかったか?) 공식 포스터. 감독은 정신질환을 앓은 누나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부모의 모습을 20년에 걸쳐 기록했다. 영화 공식 홈페이지

상영관이 많지 않은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아내와 경기도 광주까지 40분을 운전했다. 찾아간 곳은 ‘멜리에스 빈티지 시네마’였다. 영화 제목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どうすればよかったか? What Should We Have Done?>였다.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이 자신의 가족을 20년에 걸쳐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어린 시절 영민했던 누나는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부모는 그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동생은 누나를 챙기고 부모를 챙기면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누나는 1958년생이다. 나보다 한 살 아래다. 아버지는 1926년생으로 나의 스승님이나 장인어른과 비슷한 연배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가족이 아주 먼 사람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부모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의대를 졸업한 뒤 세포막을 연구했고, 어머니 역시 의대를 졸업하고 약리학 연구실에서 평생 연구했다. 어머니가 은퇴할 무렵의 연구실이 영화에 나온다. 아주 협소한 공간에 형광현미경을 비롯한 연구 장비가 빼곡했고, 냉장고에는 시약과 약품이 가득했다. 그런데 아래쪽 칸에는 식품도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의대를 졸업하고도 병원 대신 연구실을 택해 평생 피펫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일본에는 얼마나 많았을까. 기초의학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의 삶 위에서 발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벨상을 받는 한 사람의 이름 뒤에도 이름을 얻지 못한 수많은 연구자가 있을 것이다. 좁은 연구실에서 세포와 약물과 씨름하며 자신의 시간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 가족이 사는 집도 검소했다. 그런 부모에게 영민했던 딸의 삶은 어떻게 보였을까. 딸은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사가 되지 못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살아가다가 63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누구를 쉽게 탓하기도 어렵다. 부모는 딸을 지키려 했을 것이고, 동생 역시 누나와 부모를 모두 챙겼다. 그러면서도 가족이 외면하고 싶어 했던 진실에 다가가려 했다. 무엇보다 20년 동안 가족을 촬영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카메라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기록하는 도구였겠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들고 있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동생은 누나를 바라보고 부모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도 질문했을 것이다.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는 관 속에 딸과 함께 작성해 글래스고 학회에서 발표했던 논문 두 편을 넣어준다. 한때 자신과 학문을 함께했던 딸의 흔적을 마지막 길에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타로 카드와 복권도 관에 들어간다. 논문과 타로 카드와 복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두 딸의 삶에 속했던 것들이다.

영화가 던진 질문을 품고 돌아온 밤, 오래된 붉은 학위복에서 제자들과 함께한 시간과 교수로 살아온 세월을 마주한다. 논문은 검색할 수 있지만 이 옷에 밴 삶은 검색할 수 없다. 이미지 AI 생성.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갈 때는 무엇을 넣어드릴까요? 논문?”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쓴 논문을 다 넣으면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잖아.”

노벨상을 받을 만한 논문도 아니고, 논문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누구나 찾을 수 있다. 굳이 관 속에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카파 클라우사를 수의 대신 입혀서 보내줘.”

1992년 내가 박사학위를 받을 때 입었던 학위복이다. 그때 아내는 두툼한 외투 한 벌을 사라고 했다. 나는 외투 대신 청계천에 가서 학위복을 맞췄다. 내가 최종학위를 받은 학교의 붉은색 학위복이었다.

그 옷은 그날 한 번 입고 끝나지 않았다. 교수가 된 뒤 제자들이 석사·박사학위를 받을 때마다 입었다. 사진사들이 내가 학위를 받는 줄 알고 사진을 권하기도 했다. 인하의대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에서도 입었고, 정년퇴임식에도 입고 갔다. 인하대의 학장과 의무부총장은 인하의대 박사학위복 색인 초록색 학위복을 입었지만, 나만 붉은 학위복을 입었다.

외국의 학위수여식에서 졸업행진(academic procession)을 보면 이 전통이 더욱 잘 드러난다. 각자 최종학위를 받은 대학이 다르니 학위복의 색과 문양도 다르다. 사각모만 있는 것도 아니다. 유럽 대학에서는 둥근 빵떡모자를 쓰기도 한다.

학위복은 단순한 의상이 아니다. 어디에서 학문을 배웠고 어떤 계보를 이어왔는지를 몸에 걸치는 것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나의 붉은 학위복은 박사학위를 받은 날의 옷만은 아니었다. 그 옷에는 제자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있고, 교수로 살아온 시간이 있고, 마지막 정년퇴임식까지 함께했다. 그래서 논문 대신 그것을 입고 가고 싶었다.

논문은 남겨두어도 된다.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1992년 청계천에서 맞춘 그 붉은 학위복에는 검색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다.

오늘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수의 걱정을 덜었다. 내 붉은 카파 클라우사 한 벌이면 된다.

영화 속 동생은 20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가족의 진실에 다가갔다. 나는 영화를 보고 오래된 학위복 한 벌을 떠올렸다. 영화가 던진 질문,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언젠가 마지막 길에 나설 때, 내가 살아온 시간을 입고 가면 되겠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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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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