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평화호국기념관에 갔다. 무엇을 특별히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한쪽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미 제2보병사단, 이른바 Indianhead Division의 전시 코너였다.
미 제2사단은 동두천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던 부대다. 이제는 대부분의 병력이 평택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학예사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2사단이 떠나면서 자신들이 사용하던 무기와 부대기, 훈장, 그리고 여러 역사 자료를 동두천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래서 평화호국기념관 1층 한쪽에 그들의 역사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떠난 부대가 자신의 흔적을 이곳에 남겨놓은 것이다.
나는 전시된 무기와 부대기, 훈장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그것들이 아니었다.
한쪽에서 낯선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구형 스피커였다. USB가 꽂혀 있었고, 그곳에서 미 제2사단의 군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노래인지 몰랐다. 그러다 귀에 들어온 한 구절.
“We were born in France in ’17.”
1917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는 노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포성 속에서 태어난 부대. 노래는 뫼즈강과 마른강을 건너온 전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1절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And they called us ‘Second to None.’”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2절에서 노래의 시간이 갑자기 바뀌었다.
“Today along the DMZ.” 오늘날 DMZ를 따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191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부대의 군가가 한 세기를 건너 한반도에 와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전시된 물건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때 내 눈을 붙잡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낡은 표지판이었다.
“DIVISION SURGEONS OFFICE”

가운데에는 별과 인디언의 얼굴이 들어간 문양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NORTH, 그리고 한쪽에는 T-2036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맨 위의 글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Division Surgeons Office. 사단 군의관실.
전시관에서는 총과 포탄과 훈장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쟁을 기억하는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날 이상하게도 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했던 사람들의 자리를 가리키는 이 표지판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총을 든 사람이 있었다면 그 총에 맞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상처를 들여다보고, 피를 멎게 하고, 부러진 몸을 치료하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전쟁에는 전투의 장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치료의 장소도 있었다.
그때 다시 구형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Forward Together with Korea Sure and Bold…”
한국과 함께 굳건하고 용감하게 나아간다는 노래였다. 그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191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부대가 한국과 함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써 내려간다고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와 부대기와 훈장, 그리고 역사 자료는 이제 동두천에 남아 있다. 부대는 떠났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떠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전시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무기도 남아 있고, 부대기도 남아 있고, 훈장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작은 표지판 하나도 남아 있었다. Division Surgeons Office.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물건들이 그들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박물관이 하는 일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떠난 사람들의 자리를 대신하여, 남겨진 물건들이 다시 말을 하게 하는 것.

전시관을 나서면서도 그 노래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구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조금 낡은 음질의 군가.
“We were born in France in ’17…”
프랑스에서 태어나 뫼즈와 마른을 지나고 한반도까지 온 사람들. 그리고 이제 동두천을 떠난 사람들.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
“Second to None.”
제2사단. 그러나 누구에게도 두 번째가 아니라고 노래하는 사람들. 나는 그 말을 동두천에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부대는 떠날 수 있다. 사람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한 도시와 함께 보낸 시간까지 떠나지는 못한다. 그 시간은 결국 무엇인가의 모습으로 남는다.
낡은 부대기일 수도 있고, 한 점의 훈장일 수도 있고, 오래된 무기일 수도 있다. 작은 표지판 하나일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구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한 곡의 노래일 수도 있다.
그날 들었던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