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워카, 워커, 군화…한 켤레에 담긴 군인들의 시간

워커커

군화를 우리는 워카라고도 불렀다. 적어도 내가 젊었을 때는 그랬다. 1976년 대학생 병영집체교육을 받을 때도 워카라고 했고, 1983년 군의관 훈련을 받을 때도 워카라고 했다. 군화라고 해도 알아들었지만, 워카라는 말에는 군대 냄새가 조금 더 났다. 누군가는 워커라고 했다. 두 말은 한동안 나란히 쓰였다.

남대문시장에 가서 군용 물품을 살 때도 그랬다. “워카 있습니까?” 그러면 알아들었다. 군화라고 해도 되었고 워커라고 해도 되었지만, 워카라는 말이 어쩐지 더 오래된 말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그 말의 유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군화는 군화였고, 워카는 워카였다.

얼마 전 문득 궁금해졌다. 왜 우리는 군화를 워카라고 불렀을까. 영어 walker에서 온 말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글에서 이 말이 6·25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월턴 H. 워커 장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럴듯했다. 전쟁 중 미군은 국군에게 군화를 지급했다. 그렇다면 한국군이 그 군화를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워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법했다.

자료를 찾아보았다. 실제로 미 육군의 한국전쟁 병참 기록에는 당시 미군이 한국군에게 군화를 지급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1950년 11월 미 육군 병참 관계자의 보고에는 한국군 병사들의 발 크기를 조사하고 미군용 신발을 지급한 기록도 있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워커 장군이 군화를 지급하도록 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워커라는 말이 군화를 뜻하는 용례는 1950년보다 앞선 시기에도 보인다. 1947년 신문에 이미 ‘워커군화’라는 표현이 등장했다는 자료도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간의 순서만 놓고 보면, 군화를 워커라고 부른 것이 워커 장군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영어 walker가 일본을 거쳐 들어와 워카라는 발음으로 쓰이다가 한국에서 군화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는 설명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후에도 워카와 워커는 한동안 나란히 살아남았다. 나는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 1976년에도 워카였고, 1983년에도 워카였다. 그러면서 워커라는 말도 들었다. 남대문시장에서도 워카라고 하면 군화를 알아들었다.

언어는 사전에서만 변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면서 조금씩 모양을 바꾼다. 어떤 말은 사라지고, 어떤 말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어떤 말은 오래된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다.

나에게 워커라는 말이 특별한 기억으로 돌아온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었다. 2018년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병원에서 외상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군 응급구조사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외상과 응급처치에 관해 강의했다.

강의를 마친 뒤 감사패를 하나 받았다. 그런데 보통의 감사패와 달랐다. 패 위에 쇠로 만든 검은 군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군화에는 실제 신발 끈이 꿰어져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군화를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 내가 신었던 군화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날의 군화는 내 발에 신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군 응급구조사들이 내게 건넨 감사의 표시였다.

그 순간 오래전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1976년 병영집체교육, 1983년 군의관 훈련, 남대문시장의 군용품 가게. 그때마다 들었던 말, 워카.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군 응급구조사들이 내게 건네준 한 켤레의 군화.

생각해 보면 나는 젊은 날 군화를 신고 군대에 들어갔다. 군의관이 되어서는 그 군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을 진료했다. 외상외과 의사가 된 뒤에는 군인들의 다친 몸을 치료했고, 나중에는 군 응급구조사들에게 외상환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에게서 군화를 받았다. 내가 신었던 군화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내게 돌아온 셈이었다. 군화는 사람을 걷게 한다. 훈련장으로, 경계근무지로, 전장으로, 그리고 때로는 다친 전우가 있는 곳으로.

그래서 군화에는 발자국이 남는다. 흙과 먼지가 묻고, 빗물이 스며들고, 오래 신으면 가죽이 닳는다. 그 닳음은 신발의 나이가 아니라 그것을 신은 사람의 시간을 말해 준다.

얼마 전 쓴 「개미고개의 군화」에서 나는 한 켤레의 군화를 바라보며 군화의 무게를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 군화의 이름을 생각한다. 워카. 워커. 군화.

어느 말이 먼저였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워커 장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그러나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있다. 그 말은 오랫동안 한국 군인들의 입에 살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이 가리키던 한 켤레의 신발에는 수많은 군인들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2018년 내게 군화를 건네준 군 응급구조사들도 아마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군화는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신발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어디로 걸어갔는지를 기억하는 신발이다.

나는 아직도 그 군화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가끔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워카라고 불렀든 워커라고 불렀든, 그 신발을 신고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국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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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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