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황건 인하대의대 명예교수와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이 지난 6월 6~8일 충북 영동의 한 펜션에서 민병돈 예비역 육군 중장을 공동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베트남전 당시 훈장 상신을 둘러싼 경험과 동료 장교에게 전해 들은 미국 은성훈장 일화를 통해 군인의 명예와 국가의 책임을 돌아본다. 당시 상황은 민 장군의 기억에 따른 것이며, 미국 시민권 심사 일화는 당사자에게 전해 들은 내용이다. <편집자>

민병돈 전 육사교장(예비역 육군 중장)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을 때다. 당시 그는 소령 계급으로 연대 작전참모 보직을 맡았었다. 어느 날 행정 분야에서 근무하던 한 장교가 찾아왔다. 사단사령부에서 훈장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민 소령이 화랑무공훈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꺼냈다.
민병돈 소령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무슨 무공이 있습니까. 밑의 장병들이 잘 싸운 것이지요.” 그 장교는 자신이 심사 과정에 관여하고 있어 사정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러나 방문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자신은 전투병과가 아니어서 이번 참전 이후에는 무공훈장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지만, 민 소령은 전투병과이므로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고는 뜻밖의 부탁을 했다. “이번 화랑무공훈장을 저에게 양보해주십시오.” 민병돈 소령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결국 자신은 원래 상신된 것보다 낮은 훈장을 받고, 그 장교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훈장은 개인끼리 양보하거나 나눠 갖는 물건이 아니다. 국가가 공적을 심사해 수여하는 명예다. 이 회고는 당시 훈장 상신 과정에서 개인적인 부탁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일은 한 차례 더 있었다. 다른 장교가 자신의 병과에서는 무공훈장을 받을 기회가 흔치 않다며 같은 부탁을 해왔다. 민 장군은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그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장교가 누군가를 보냈다. 보낸 사람의 손에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민 소령은 순간 화가 났다고 했다. 봉투를 내던지고 따졌다. “사람을 무엇으로 보고 이런 것을 보내느냐.” 이어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보고해서 그 화랑무공훈장도 취소시키겠다.” 봉투는 돌려보내졌다. 민 소령에게는 훈장을 부탁하는 일에 더해, 그 대가로 돈까지 건네려는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경험은 훈장제도에 대한 그의 신뢰에 영향을 미쳤다. 전장에서 누가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와 별개로, 상신 과정에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정이 끼어들 수 있다는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훗날 진급심사에 참여했을 때도 민 장군은 베트남전에서 받은 훈장만으로 대상자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훈장을 받았는지보다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공적으로 상신됐는지를 함께 보려 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그의 경험을 베트남전 수훈자 전체에 대한 평가로 확대할 수는 없다. 정당한 공적으로 훈장을 받은 장병들의 명예와, 일부 상신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 오히려 공정한 심사가 중요한 이유는 정당한 수훈자들의 명예까지 의심받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민 장군은 훈장을 많이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받은 훈장이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었다고 했다. 훈장을 받기 위해 싸운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가 들려준 또 하나의 이야기는 훈장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은성훈장, 실버스타를 받은 동료 장교에 관한 일화다. 민 장군은 그를 용감하고 군인다운 기질이 강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소령 진급에서 탈락한 뒤 크게 실망해 군복을 벗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 장교는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지만 영어가 서툴러 심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짐을 정리하다 베트남전에서 받은 은성훈장을 발견했다. 다음 시민권 심사 때 그는 그 훈장을 가져갔다.
그가 민 장군에게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심사관의 질문을 알아듣고 답하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훈장을 꺼내 보였다. 베트남전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자 심사관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그들은 왜 이제야 훈장을 보여주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후 시민권 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물론 이 일화의 심사 기록과 구체적인 적용 절차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은성훈장만으로 영어 요건이 면제되거나 시민권이 부여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민 장군이 전하고자 한 것은 그 장교의 과거 공적을 심사관들이 알아보고 존중했다는 대목이다.
영어가 서툴고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이민자에게도 전쟁터에서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은성훈장은 그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어떤 공적을 세웠는지 미국 정부가 인정해 남긴 기록이었다. 짐 속에 있던 훈장이 오랜 세월 뒤 그 시간을 다시 드러낸 셈이다.
민 장군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훈장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생각했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에서는 훈장을 양보해달라는 부탁과 봉투가 오갔지만, 동료가 전한 이야기에서는 오래된 훈장이 한 군인의 공적을 증명했다.
두 일화만으로 한국과 미국의 훈장제도 전체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훈장의 가치를 지키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는 생각해볼 수 있다. 공적을 정확하게 확인해 수여하고, 그 기록을 보존하며, 세월이 지나도 수훈자의 용기와 희생을 존중하는 일이다.
훈장은 군인의 명예를 상징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한 사람에게 국가가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며, 때로는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기억하는 표지가 된다. 그렇기에 부탁이나 거래로 수훈 대상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부당한 상신은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정당하게 훈장을 받은 사람에게도 의심을 덧씌우고, 국가가 수여한 명예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 반대로 공정하게 수여하고 그 의미를 오래 지킨 훈장은 수십 년이 지나도 한 사람의 공적을 증명할 수 있다.
민 장군은 자신에게 훈장을 양보해달라고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개인의 이름보다 당시 그런 일이 가능했던 관행과 제도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봉투를 돌려보낸 기억과 동료의 은성훈장 이야기는 군인의 명예라는 질문으로 만난다. 군인은 맡은 임무와 전우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국가는 그 공적을 공정하게 인정하며 오래 기억해야 한다. 한 사람의 가슴에 달린 훈장을 지탱하는 것은 군과 국가 전체의 신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