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사 이야기 1
한겨레신문에는 독자 만평란이 있었다. 1991년경 1년여 동안 꾸준히 투고했고, 내 만화가 여러 번 실렸다. 어느 날 만화를 그리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박재동 선생을 찾아가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분이었다.
그 후 어느 날 박 선생에게 “그림을 좀 그려보겠느냐”는 전화가 왔다. 한겨레로 찾아갔고, 그러면서 지면에 삽화를 그리게 됐다. 이후 4년간 한겨레에서 프리랜서로 삽화를 그렸고, 말미에는 박 선생이 맡던 목요일 그림판까지 나에게 맡겨주셨다.
그전에도 언더그라운드 조직에서 만화를 조금씩 그리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만화 인생의 시작은 그때였다. 아이는 태어났고 미래는 암울하게만 보이던 시절, 내 앞에 길을 열어준 분이 바로 박 선생이다. 프리랜서였지만 어느 정도 수입이 되도록 신경도 써주셨다. 여러 가지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나에게는 은사 같은 분이다.
작년에는 대상포진으로 고생하셨다고 들었다. 때때로 소고기라도 사서 보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마음의 빚만 쌓여간다.

신문사 이야기 2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편집국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암묵적으로 돌아가며 피우기는 했지만, 어떤 때는 거의 모두가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다.
지금은 흡연자들이 눈치를 보는 시대가 됐지만, 그때는 오히려 비흡연자들이 고난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나는 흡연자였기에 그런 점에서는 자유를 만끽했다.
또 하나 의외였던 것은 학벌 타파를 내세운 회사였음에도 서울대 출신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분위기는 많이 희석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