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교회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죽창’, 잊지 않는 것이 기억이다

김제 만경중학교를 지나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작은 교회가 나타났다. 그 옆에는 마치 하얀 미술관을 닮은 건물이 서 있었다. 예전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개조한 듯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작은 광장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흰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남녀의 석고상이었다. 배경도 희고, 벤치도 희고, 사람들도 희었다. 작품의 제목은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수복을 기다렸을까. 가족을 기다렸을까. 아니면 다시 종이 울리는 예배를 기다렸을까.

나가는 길에 순교기념전시관이 있었다. 한쪽에는 방명록과 교회의 옛 교육 교재들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교회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었다. 가장 큰 벽면에는 ‘만경교회 15인의 믿음의 증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열다섯 분 가운데 한 분은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사진 대신 나무십자가 하나가 걸려 있었다.
얼굴은 남지 않았지만, 믿음은 십자가 하나로 남아 있었다. 그 오른편 벽에는 죽창 두 자루가 기대어 서 있었다. 내 키만 한 길이였다. 끝은 붉게 칠해져 있었다. 나는 죽창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고, 훨씬 날카로웠으며, 무엇보다 훨씬 무서웠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죽창가를 부르며 외세와 부패한 권력에 맞섰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56년 뒤, 그 죽창의 끝이 외세가 아니라 같은 마을 사람을 향하게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시를 모두 둘러본 뒤 혼자 불을 껐다. 순간 방 안은 조용한 어둠에 잠겼다. 출구를 향해 몇 걸음을 옮기는데 등 뒤에 두 자루의 죽창이 서 있었다. 붉게 칠해진 끝이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공포였다.
그 죽창은 유리 진열장 속의 전시품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의 손에 들릴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의 흉기였다. 나는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햇빛 아래 서서야 비로소 긴 숨을 내쉬었다.
동학농민군의 죽창은 외세와 부패한 권력을 향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죽창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마을에서 살아온 이웃을 향했다. 나를 오래 붙잡은 것은 죽창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그 방향이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만경강을 건넜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강이었다. 강 옆으로는 끝없이 평야가 펼쳐졌고, 길가에는 ‘지평선 쌀’ 광고판이 보였다. 강은 그날의 피를 기억하지 않는 듯 묵묵히 흐르고 있었고, 평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푸르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은 강물처럼 흘러가 버려서는 안 된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쩌면 수복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기억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기다림에 응답하는 길은 거창하지 않았다.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기억한 것을 다시 전하는 것. 그것이 이번 순례의 작은 회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