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세계

예일대에 남은 아흔아홉 의사의 농담…역사에는 가정법이 없지만 기억에는 남는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99세 박소회 선생이 미국의 예일대 학생들에게 강연 후 찍은 사진

며칠 전 아흔아홉 살의 선배 의사 박소회 선생님에게서 사진 한 장과 짧은 편지가 도착했다. 사진은 예일대학교에서 한국전쟁을 주제로 강연을 마친 뒤 학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의사가 미국의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자리였다.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강연 중 학생들에게 ‘예일도 한국전쟁에 조금은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농담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박소회 박사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1950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딘 애치슨은 예일대학교 졸업생이었다. 그해 1월, 그는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설명하면서 일본과 필리핀은 언급했지만 대한민국은 명시적으로 포함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 북한은 남침을 감행했다. 물론 오늘날 역사학은 한국전쟁의 원인을 애치슨의 연설 하나로 설명하지 않는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계산, 중국 공산화, 소련의 핵무장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박 박사의 농담은 역사적 책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말이 때로는 얼마나 큰 파장을 남길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유머였다.

편지를 읽고 나는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 그러나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가정법이 남는다. 만약 그때 애치슨의 방위선에 대한민국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어쩌면 역사는 그대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질문을 품고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사진 속 예일 학생들은 이제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날 그들이 들었던 작은 농담 하나가, 한국전쟁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사진 한 장은 오래 전 강의실의 웃음을 다시 불러왔다. 그리고 그 웃음 뒤에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의 질문 하나가 조용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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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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