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육

배재고 응원 논란을 보며 50년 전 ‘우리의 함성’을 떠올리다

나는 1973년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04년 설립된 우리 학교는 당시 농구·야구·아이스하키의 강호였다. 학교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오전 수업만 마치고 장충체육관 농구장, 서울운동장 야구장, 동대문 아이스링크로 달려가 응원했다. 체육시간에 응원 연습을 하는 일도 흔했다. 그 시절 농구는 휘문, 용산, 경복이 우승을 다투었다. 휘문은 ‘신동파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1973년 어느 날, 휘문과 경복의 경기에서 휘문이 아쉽게 패했다. 경기 후 응원단끼리 시비가 붙었고, 휘문 학생이 경복 학생을 때려 치아 여러 개가 손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맞은 학생은 당시 법무부장관의 아들이었다. 유신 시절이었기에 우리는 가해 학생이 퇴학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치과의사였던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치료를 책임지기로 하였고, 학생은 유기정학으로 마무리되어 진급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질풍과 노도(Sturm und Drang)’의 시기를 지나던 청소년들의 미숙한 감정이 낳은 사건이었다. 비록 자신의 아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법무부장관이 끝내 용서했다는 사실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훗날 피해 학생의 매부와는 같은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그해 나는 야구장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 우수고교초청야구대회까지 서울 예선부터 본선까지 따라다니며 응원했다.

배재고 강속구 투수 하기룡(1955.5.8~2021.2.10). 저세상으로 떠난 그는 최근 모교와 광주일고 경기 중 일어난 논란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가 만난 학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응원을 보여준 곳은 배재고등학교였다.

그날 휘문의 선발은 2학년 언더드로 투수 차준섭, 배재는 강속구 오버드로 투수 하기룡이었다. 경기 결과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기룡의 묵직한 직구에 휘문 타자들이 고전했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휘문의 자랑은 ‘파도타기’ 응원이었다. 그러나 배재의 응원은 한 수 위였다. 검은 교복 상의를 열고 닫을 때마다 호랑이가 달리는 것처럼 보이던 역동적인 응원은 당시 학생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응원의 질에서 밀린다고 생각했던 휘문의 응원단장은 상대 교가를 이용해 놀리기 시작했다.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세운 배재학당의 교가에 나오는 ‘학당’을 ‘악당’으로 바꾸어 따라 부르게 한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는 그런 언어유희가 그저 재미있었다. 다행히 농구장에서의 불상사와 같은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훗날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배우며, 비슷한 소리를 가진 단어를 연이어 사용하는 현상을 음향연상(clang association)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당시 우리의 응원은 병적인 현상이 아니라, 청소년 특유의 장난기와 집단문화가 만들어 낸 언어유희에 가까웠다.

세월은 흘러 몇 해 전에는 고교 동기가 모교 교장이 되어 특강을 부탁했다. 2,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는데, 순수과학 분야 교수의 강연은 신청자가 많지 않지만 의사가 오면 50명 정원이 5분 만에 마감된다고 했다.

교문에 들어서자 담벼락에는 재수생까지 포함한 의과대학 합격자 약 100명의 이름이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나는 ‘세상을 움직인 의사들’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고, 학생들은 왜 의사가 되었는지, 왜 외과를 선택했는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질문을 쏟아내던 그들을 보며 문득 내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그 나이에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고, 응원에 목이 쉬도록 소리쳤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때는 나에게도 분명 질풍과 노도의 시대였다.

문득 나보다 두 살 많았던, 그날 강속구를 뿌리던 상대편인 배재 투수 하기룡 선수가 떠올라 찾아보았다. 그는 프로야구 코치로도 활동했지만, 5년 전 예순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소식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그날 우리는 서로를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상대 학교를 놀리며 경쟁했지만, 결국 같은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청춘들이었다는 것을.

그 시절의 함성은 이제 추억이 되었고, 그 함성을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우리의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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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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