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의 적이 무섭다, 뒤의 중대장이 더 무섭다”
현충일 무렵 나는 아흔한 살의 노병과 2박 3일을 함께 보냈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했고, 월남전에서도 싸웠으며, 훗날 특전사령관도 지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병사들은 왜 전진합니까?”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터지는 전장에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성벽을 기어오르고, 누군가는 적진으로 뛰어들며, 누군가는 쓰러진 전우를 구하기 위해 다시 총탄 속으로 들어간다.
노병의 대답은 뜻밖에도 간단했다. “앞에 있는 적이 무섭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뒤에서 독려하는 중대장이 더 무섭지.” 그리고 그는 웃으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만드는 게 훈련이야.”
순간 나는 전쟁영화나 전쟁문학에서 접했던 수많은 영웅담이 떠올랐다. 우리는 흔히 병사들이 애국심과 용기로 전진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장을 통과한 노병의 설명은 훨씬 현실적이었다. 병사는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죽음이 두렵다. 군대의 훈련은 그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몸이 앞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중국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전쟁터의 용맹을 설명하며 “용감한 전사가 먼저 성벽을 오르고 적진에 뛰어드는 것은 무거운 상을 받기 위함”이라고 적었다. 냉정한 현실주의다. 인간은 명예와 이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현대 군사심리학은 또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병사는 국가나 이념보다 옆에 있는 전우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결국 전진의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명예도 있고, 포상도 있으며, 전우애도 있고, 사명감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 훈련이다.
그렇다면 부대는 왜 붕괴할까? 우리는 흔히 병력이 부족해지면 군대가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사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병력의 절반 이상이 살아 있어도 부대가 붕괴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심각한 손실을 입고도 끝까지 버티는 부대도 있다.
차이는 숫자가 아니라 믿음이다. 지휘관이 살아 있고, 통신이 유지되며, 보급이 계속되고, 전우가 옆에서 싸우고 있다면 병사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보급이 끊기며 승리의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판단하는 순간, 병력은 남아 있어도 전투력은 사라진다.
사마천의 시각으로 말하자면, 승리 후 받을 보상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전진의 이유도 사라진다. 현대 심리학의 언어로 표현하면 집단적 효능감(combat effectiveness)의 붕괴다. 결국 군대는 총탄보다 먼저 마음속에서 무너질 수 있다.
노병의 말은 전진의 이유뿐 아니라 붕괴의 이유도 설명하고 있었다. “앞의 적이 무섭다. 하지만 뒤의 중대장이 더 무섭다.”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중대장이 있다는 것은 아직 부대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명령이 존재하고, 질서가 유지되고, 승리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신호다.
병사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전진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싸울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전진한다. 그리고 부대는 병사가 죽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다고 믿게 될 때 무너진다.
전진의 이유와 붕괴의 이유는 서로 다르지 않다. 둘 다 결국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