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칼럼

[루소 고백록③] 볼테르와의 불화, 그리고 고립의 시작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사상가 볼테르(1694~1778)의 초상.

장자크 루소(1712~1778)의 <고백록>은 서구 근대 자서전 문학의 출발점이자, 인간 내면에 대한 가장 용기 있는 탐구의 기록입니다. 루소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며, 부끄러움조차 숨기지 않고 진실을 드러냅니다. <아시아엔>은 루소의 원전을 바탕으로 그의 유년기부터 철학자로서의 성숙, 글쓰기를 통한 구원, 그리고 고립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10회로 나누어 싣습니다. 연재를 통해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넘어 ‘나는 고백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한 인간의 선언을 마주하게 됩니다. <편집자>

루소는 계몽주의 진영에서 점차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 계기는 동시대 최고의 문필가이자 사상가였던 볼테르와의 격렬한 논쟁이었다. 1755년 루소는 자신의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볼테르에게 보내 일종의 감수 요청을 한다. 당시 볼테르는 루소가 넘기에는 너무 큰 벽 같은 존재였다. 루소는 이 논문에서 문명화의 진보가 인간 사회를 오히려 타락과 불평등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철저히 ‘이성과 진보’를 신봉하던 계몽주의 진영에 대한 정면 비판이었다.

그러나 볼테르의 반응은 혹독했다. 그는 논문 여백에 “부자들이 가난한 자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거지 철학을 보라!”고 썼다고 전해진다. 당시 프랑스에서 개인 갑부 상위 20인 안에 들었던 볼테르는 루소의 ‘소유권 비판’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국제무역, 주식투기, 고리대금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사유재산이 불평등의 뿌리다”라는 루소의 주장은 볼테르와 주류 계몽사상가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급진적 발언이었다.

이 사건 이후, 루소와 볼테르의 대립은 철학적 견해 차이를 넘어 개인적 적대감으로 확산된다. 대표적인 사건이 1755년 포르투갈 리스본 대지진에 대한 해석이었다. 수만 명이 성당에 모여 미사를 드리던 도중 대지진이 발생해 죽은 사건은 유럽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겼다. 볼테르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지전능한 신이 이토록 잔혹한 재앙을 방치했다면, 신의 자비에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루소는 신이 아닌 ‘인간 문명’이 문제라고 응수했다. 지진 다발 지대에 도시를 만들고, 성당에 수천 명을 모은 인간의 오만이 대재앙을 자초했다는 것이 루소의 견해였다. 그는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 사회 자체의 불합리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루소는 점점 ‘계몽주의의 이단자’로 낙인찍히기 시작한다.

결정타는 제네바의 연극 금지 조례를 둘러싼 갈등에서 발생했다. 당시 제네바는 청교도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연극을 금지하고 있었고, 극작가 볼테르는 이를 해제하려 로비를 벌였다. 이에 루소는 1758년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연극은 귀족과 상류층만이 향유하는 계급적 오락”이라고 비판하며 제네바 당국의 금지 정책을 지지한다. 그는 대중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축제와 공동체적 즐거움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문화와 예술마저도 평등의 원칙 아래 두어야 한다는 루소의 철학적 일관성이 반영된 주장이었다.

볼테르는 이에 격분해 루소를 공격했고, 디드로와 콩디야크 등 ‘백과전서파’ 역시 루소와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루소는 스스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계몽주의의 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말했을 뿐인데, 그들은 내가 이성을 모욕했다고 했다.”

이후 루소는 ‘계몽주의 내부의 이단자’로 불렸다. 그는 디드로와의 절교, 볼테르와의 격렬한 논쟁, 사회적 고립, 고아원에 자녀를 맡긴 사실에 대한 비난 등으로 인해 점차 은둔에 가까운 삶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외로움과 고립은 그를 침묵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루소는 자신만의 언어로, 고독 속에서 더욱 깊은 사유를 펼치며 <에밀>, <사회계약론>, <고백록> 같은 불멸의 저작들을 완성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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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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