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엄상익 칼럼] 윤석열,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길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특검의 수사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9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끝난 뒤 법원을 떠나고 있다.

뙤약볕 감방에 든 전 대통령 윤석열…고뇌에 찬 깊은 성찰을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다. 화면에 비친 그의 눈빛은 예전과 달리 힘이 빠져 보였다. 지금 그는 어떤 심정일까.

그 마음이 어떤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오래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죄를 다루는 법정에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 전두환 측은 법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 그 요건을 판단하는 권한은 우리 측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권력을 잃었고, 당시 판단이 옳았는지를 따질 권한은 여론과 판사에게 넘어갔습니다. 판단 주체가 바뀐 것이지요.”

그 말에는 권력의 속성과 허망함이 담겨 있었다. 지금의 윤석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만약 보다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북측의 도발을 유도해 전시 상황을 만든 뒤,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권력을 장악했다면, 오히려 지금의 여당과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으로 몰려 단죄되었을 수도 있다. 검찰과 법원이 그때그때 권력의 입장을 따라 움직여온 것은 과거가 증명한다.

한 정치인이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엘리트와 카운터 엘리트의 진흙탕 싸움이다. 결국 이긴 자가 정의다. 국민은 선동에 휘둘릴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뼈가 있었다. 윤석열의 처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싸울 결기와 결단 없이 허리춤의 칼만 살짝 보이다가, 집단의 분노에 휘말려 쓰러져가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는 앞으로 감옥생활을 어떻게 버텨낼까. 감사원장을 지낸 고 한승헌 변호사는 감옥 첫날을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다.

“죄수복을 갈아입고, 식판과 젓가락을 가슴에 안은 채 교도관을 따라 복도를 걸었습니다. 감방에 들어서니 ‘철커덩’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더군요. 억울한 마음에 속이 다 끓었고, 어떻게 이 상황을 이겨낼지 막막했습니다.”

윤석열도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요즘 7월의 뙤약볕은 매섭다. 박근혜와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어 있던 어느 여름, 구치소를 찾은 적이 있다. 한 교도관이 조용히 말했다.

“윗층 사동에 계신 두 분, 거의 반쯤 쓰러져 있을 겁니다. 슬라브 천장과 콘크리트 벽으로 햇볕이 그대로 들어오니까요. 아래층으로 옮겨드리고 싶어도 다른 수용자들이 차별이라며 들고일어나서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수감자입니다.”

이명박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말도 들려왔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윤석열 역시 감방 안에서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처참한 영락이다.

그는 사람 복도 없는 듯하다. 줄줄이 배신의 칼날이 날아든다. 동지적 의리가 없는 결과라면 자업자득일 수 있다. 문득 떠오른 이름이 있다. 이회창 후보의 측근이었던 서 모 변호사. 그는 정치자금을 트럭에 실어 나르다 구속되었고, 그 긴 수사와 재판 기간 내내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를 잘 아는 고교 선배가 말했다. “서 변호사는 정말 독한 친구였어. 공황에 빠질 만도 한데 끝까지 묵비권을 지켰지. 이회창 후보가 차라리 자기가 감옥에 가겠다고 하자,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말렸어. 교도소 안에서도 화초에 물을 주며 미소를 잃지 않았어. 고등학교 시절 주먹 그룹 ‘쎄븐’ 소속이었는데, 곤조 하나는 끝내줬지.”

그런 의리는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윤석열에게도 그런 충직한 부하가 있었다면, 지금의 불행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오래전, 막 구속된 한 대통령이 가족을 통해 몇 가지를 의논한 적이 있었다. 교도관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옥 안에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등. 대통령도 알고 보면 무협지를 즐겨 읽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게 되어 있다. 살면 살아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 불가마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고, 언젠가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