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참맛 느끼려면 남인도로 가자

케랄라에서 열리는 전통 보트 경주 <사진=신화사/뉴시스>


[Country in Focus]?베네치아 뺨 치는 ‘케랄라 백워터’…신혼여행지 ‘강추’

인도에 대한 사람들 반응은 극에서 극으로 갈린다.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도가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한다. 지역과 종교, 인종과 민족, 언어와 문화, 카스트와 신분지위, 이념과 정치 등 갖가지 잣대로 나뉘어 가로세로 픽셀처럼 수많은 고립적 서브그룹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도는 양극화사회를 넘어 일종의 ‘행렬사회(matrix society)’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흔히 중국을 두고 ‘하나의 중국’이 아니라 ‘두 개의 중국’이 있고, ‘차이나’는 ‘차이가 난다’는 뜻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 실제로 중국에 가 보면 해안과 내륙지방 차이가 현저하고, 한 지역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클 뿐 아니라 엘리트 계층과 서민 대중이 다른 인종 같다고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중국은 언어를 공유하고 문화적 정체성이 보편화돼 있어 인도에 비해 국민적 통합수준이 월등 높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 한 가지 비교를 더 하면, 인도 인구는 12억3700만 명(2012년 인구조사)인데 중국은 13억5000만 명(2012년 추계)이다. 유엔 세계인구전망 보고서(2012년)에 따르면 2028년이 되면 인도 인구가 중국을 추월하게 된다. 중국은 14억6000만 명을 정점으로 줄어들 전망인데 반해 인도는 인구가 계속 늘어 20억 명을 돌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도는 사회적 분열 외에도 부패와 관료주의, 공공의식 부족 등 부정적 요소가 적지 않다. 이런 점이 눈에 크게 들어오는 곳이 북인도다. 델리와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자이푸르를 잇는 ‘골든 트라이앵글’을 포함해 델리에서 바라나시를 거쳐 네팔로 넘어가는 코스, 뭄바이로부터 아잔타 석굴과 카주라호 사원 코스, 달라이라마가 사는 다람살라에서 마날리와 레로 넘어가는 코스 등이 모두 북인도에 있다.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들 순회로에는 수많은 악덕 상인과 사기꾼들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사람들은 외국인을 곁눈질로 관찰하지만 웬만해선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런데 인도에선 관광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이들 중 일정 비율이 범죄 의도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인도에는 사기꾼, 도둑, 강간범이 득실거린다는 ‘불공정한’ 인상을 받곤 한다. 사실 인도사람 대다수는 착하고 친절하다. 알라푸자라는 곳에서 마주친 한 50대 버스 차장은 동티모르의 구스마오 전 대통령처럼 고상한 얼굴을 한 남자였다. 그만이 아니라 인도에는 다른 나라 못지않게 선량하고 삽삽한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가 만나지 못한 것뿐이다.

케랄라의 수확제 ‘오남축제’. 모든 가정은 마하발리왕을 맞이하기 위해 꽃무늬 카펫과 장식을 준비한다. <사진=신화사/뉴시스>


같은 나라 맞나 의아할 정도

나는 인도에 두 번 가봤다. 2008년 첫 여행 때 사람들이 보통 북인도를 먼저 가는 것과 달리 나는 남인도를 돌았다. 뭄바이 공항에 밤늦게 내려 대합실에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가까운 기차역으로 향했다. 초행이라 좀 긴장했는데 역에 가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하얀 옷을 둘러쓰고 맨바닥에 누워있었다. 1960년대 초 서울에 콜레라가 유행했는데 옥인동 순화병원 병상이 모자란 바람에 환자들이 흰 시트를 덮고 마당에 즐비하게 누워있던 것을 본 기억이 연상됐다.

예정시각이 지나도 열차가 오지 않아 물어봤더니 폭우로 철길에 흙사태가 일어나는 바람에 운행이 취소됐다는 것이었다. 하릴없이 통근열차를 타고 뭄바이 중앙역으로 갔다. 그런데 좌석이 있는 기차표는 하루 전날 사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당일 구할 수 있는 방갈로어행 3등 열차표를 샀다. 기차에 올라보니 마침 1인용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냉큼 앉아 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뒤이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짐 싣는 선반은 물론이고 객석 중간 바닥에까지 끼어들어가 앉고 복도에는 아예 천을 깔고 누웠다.

뭄바이에서 방갈로어까지 꼬박 25시간이 걸렸다. 인도 기차는 완행과 특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열차에 에어컨 여부와 침대차 종류에 따라 6~7개 등급이 있다. 기차가 푸네를 지나 데칸고원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많이 내려 여유공간이 좀 생겼다. 인도는 어디 가나 빽빽할 거라 여겼는데 데칸고원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지경’이 꽤 있었다. 승객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걸더니 여러 명이 둘러싸고 호구조사를 벌였다. 한참 묻고 캐고 따지더니 여행계획에 대해 취조를 했다. 방갈로어를 가는데 거기서부터는 계획이 어그러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의논하고 조정하더니 내가 갈 코스를 모두 정해줬다. 덕분에 나는 3등 객차의 친절한 인도사람들이 정해준 길을 따라 방갈로어에서 뭄바이까지 2주일 동안 여행했다. 남단 카냐쿠마리를 건너뛴 것을 제외하면 그들이 알려준 코스 대로 시외버스 편으로 줄곧 다녔다.

내가 다닌 남인도 코스는 뭄바이-방갈로어-마이소르-반디푸르국립공원-우띠(Ooty)-코임바토레-마두라이-콜람-알라푸자-코치/에르나쿨람-코지코데(캘리컷)-망갈로어-고아-뭄바이였다. 이 가운데 특기할 만한 곳은 첫째, 마이소르에서 우띠로 넘어가는 닐기리 산맥 둘째, 콜람과 알라푸자를 잇는 케랄라 물길(Backwaters of Kerla) 셋째, 16세기 향신료 무역 중계지였던 포트 코친 등이다.

마이소르는 백단향유(sandalwood oil) 특산지다. 백단향유는 석가모니가 설법하면서 출가 전 카필라 성 왕자였을 때 “백단향유가 아니면 바르지 않았다”고 술회한 것이 머릿속에 각인돼 있었다. 일부러 교외에 있는 공장까지 찾아갔는데 폐업을 해서 허탕쳤다. 시내의 주 정부가 직영하는 가게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백단향유를 샀는데 발라보니 별다른 향내는 느끼지 못했다.

우띠는 유럽 식민지 곳곳에 있는 ‘힐 스테이션(Hill Station)’의 하나다. 힐 스테이션은 식민지배자들이 아열대 식민지에서 피서를 하기 위해 높은 산악 지역에 개발한 휴양지이다. 인도네시아의 반둥, 필리핀의 바기오, 베트남의 달라트, 말레이시아의 캐머론고지, 북인도의 심라 같은 곳이다. 우띠에는 인도와 유럽인 학생들이 함께 다니는 외국인 학교가 있는데 날씨가 시원해서 인도 사람들은 버스가 우띠에 들어서자 두꺼운 겨울옷을 껴입었다.

케랄라 백워터의 일몰 <사진=위키미디어>


환상의 커피농원, 코친의 낭만

닐기리 산맥은 마이소르와 우띠 사이 산들인데 커피 농장이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반둥으로 올라가는 뿐작(Puncak) 고개 차밭이 장관으로 유명한데, 닐기리 산맥의 커피 농원은 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느꼈다.

케랄라는 인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주라고 인도사람들이 꼽는 곳이다. 특히 케랄라 물길은 8시간 정도 걸리는 얕은 운하다. 바다와 나란히 수십㎞의 관개용 물길이 만들어져 띄엄띄엄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고, 페리가 집집마다 서고는 한다. 물 속에는 큰새우가 득실대고 물이 풍부한 탓인지 쌀농사 짓는 농가의 살림이 넉넉해 보였다. 내가 갔을 때는 총선 직전이라 벽보와 플래카드가 요란했다. 특히 공산당 상징인 낫과 망치가 두드러졌다. 케랄라 주와 서벵골 주는 독립 이후 수십 년 동안 공산당이 주 정부를 장기집권 해 오다 2012년에야 정권을 내놓았다.

케랄라 백워터는 내가 가본 어떤 관광지 못지않게 훌륭하고 정감이 가는 곳이었다. 운하에는 커다란 하우스보트들이 많다. 하루 전세를 내면 선장과 선원들이 밥까지 지어 갖다 준다고 한다. 누가 신혼여행 어디로 가면 좋으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케랄라 물길과 포트 코친을 한 데 엮어 보라 권하고 싶다. 내 생각에 케랄라 물길은 베네치아 운하보다 더 아름답고 좋은 곳인데 항공료 말고는 비용이 훨씬 싸다.

코치의 항구지역 포트 코친. 아름다운 바닷가를 자랑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치 주민들이 원나라 시대부터 전래된 ‘중국 그물’을 이용해 낚시하고 있다. <사진=신화사/뉴시스>

포트 코친은 코치라는 도시의 항구지역이다. 케랄라의 주요 도시는 대부분 이름이 둘씩 있다. 원래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영국인들이 붙인 이름이 있는데 민족정기를 살린다고 인도식 이름을 죄다 붙이는 바람에 복수 이름을 갖게 됐다. 이를테면 캘리컷은 코지코드가 됐고, 코친은 코치, 알러피는 알라푸자, 퀼론은 콜람 등이다. 코치는 향료생산지였던 인도네시아 말루쿠 섬을 포르투갈이 차지한 뒤 해운중계지로 이용됐다. 과거 유대인 거주구역이 지금도 남아 있다. 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던 유대인 상술이 새삼스러웠다. 바닷가에는 원나라 때 들여왔다는 큰 고정식 어망 몇 틀이 ‘중국 그물’이란 이름과 함께 남아 있다.

황량하고 각박한 느낌의 북인도와 달리 남인도는 전반적으로 풍성하고 넉넉한 곳이다. 사람들도 더 여유가 있고 외국인을 등치려는 사람도 적은 것 같았다. 북인도에 갔다가 남인도를 들르면 같은 나라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닐기리 산맥만이 아니라 케랄라와 타밀나두를 가르는 웨스턴 가츠 산맥은 연 강수량 3000㎜로 천연의 보고이자 야생동물의 왕국이다. 남인도는 히말라야의 설산이나 카슈미르의 자연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풍광의 향연을 베풀어준다. 중국, 일본 여행에 질리고 동남아에 물린 사람은 모쪼록 남인도에 가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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