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군인자녀 기숙학교 ‘한민고’ 3월 개교
경기 파주 6만㎡ 터에 세워…1기생 400명 선발
군인자녀를 위한 기숙형 사립고 한민고등학교(교장 전영호)가 3월 개교한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1학년 남녀 13개 학급 신입생 400명을 모집한 한민고는 현재 마무리 공사로 분주하다. 1970년 서울 중경고등학교와 춘천제일고등학교가 군인자녀 교육기관으로 설립됐다가 1982년 국립화한 이후 처음이다. 한민고가 문을 열면?그동안 자녀교육에 어려움을 겪었던 직업군인들에게 희소식이 될 전망이다.
2011년 10월. 대구의 한 군인자녀 여중생이 왕따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잦은 이사와 부모와 떨어진 생활로 학생이 어려운 삶을 산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소령~중령의 평균 이사 횟수는 해당 계급 근무 중 17.6회, 대령은 21.4회로 나타났다. 더욱이 간부 중 읍면 이하 지역에 근무하는 비율은 49.9%로 절반에 육박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군인자녀가 ‘현대적 유목민식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평균 열 번 넘게 부모를 쫓아 옮기다 보니 군인자녀 32%가 스스로를 보통 삶에서 ‘방관자’라고 느끼고 8%는 어떤 사회적 그룹에도 못 낀다고 생각한다.
부친이 육군 장교였던 안현기 서울대 교수는 “초등학교 때만 전학을 여섯 번 했다”며 “낯선 환경이 두렵고 싫었다”고 말했다. 박흥환 예비역 소장의 부인 이영숙씨는군인가족생활수기에서 “큰 딸이 고등학교를 두 번 옮겼는데 학원도 꾸준히 다닐 수 없는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해군 장교 아내인 박지영 씨는 “관사가 아닌 경우 부동산 걱정에, 아이들은 전학 갈 때마다 교복부터 책까지 다시 사줘야 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미성년 군인 자녀는 12만 명, 고입을 앞둔 중3 학생은 5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업군인을 중심으로 군인자녀를 위한 학교설립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2009년 계룡대 근무 간부 10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90.3%가 군인자녀 학교설립에 찬성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태영 장군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2010년 국방부 군인자녀학교설립단을 창설했다.?2011년 10월 국방부는 학교법인 ‘한민학원’을 설립하면서 사업 추진을 지휘했던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을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이사로는 장종대·김재민 예비역 소장, 홍두승 서울대 교수, 김일섭 한국형경영연구원장 등을 선임했다. 군인자녀 학교설립을 국가가 지원하는 법적 근거도 만들었다.
김태영 전 장관, 학교 설립 앞장
국방부는 2012년까지 국고 60억원을 민간보조금(민간단체에 주는 보조금) 형식으로 한민학원에 지원했고, 지난해 290억원까지 총 350억원을 지원했다. 군인 자녀들을 위한 장학재단인 호국장학재단도 한민학원에 200억원을 출연했다. 한민학원은 이를 기반으로 2012년 11월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국방부 소유 땅 5만9504㎡를 매입하고 교사 신축공사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입학설명회를 개최한 뒤 첫 입시에 1084명이 몰려 경쟁률이 2.7대1을 넘었다. 격오지 근무로 어려움을 겪는 군인자녀를 정원의 70%까지 뽑고 나머지 30%는 경기도 내 일반 학생들에게 입학 기회가 주어졌다. 초대교장으로 내정된 전영호 경기과학고 교장은 “원서를 받아보니 대부분의 학생이 내신 200점 만점에 190점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기숙사비·식비·수업료 등을 합해 학비가 연 1100만원 정도 들지만 다른 기숙학교보다 저렴한데다 최고의 교사진과 서울대 교수 멘토단, 첨단 교육환경 등에 대한 기대가 반영됐다.
한민고는 ‘올바른 국가관과 이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양성’을 건학이념으로 ‘대한민국’의 중간 두 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다. 전교생이 39㎡ 규모 4인1실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며, 전원 기숙사 입소가 원칙이다. 국방부 학교설립추진단의 이재봉 중령은 “교사숙소 27실이 교내에 있어 교사들이 함께 생활하며 학생들을 돌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민고는 학습 능률을 북돋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주한미군의 협조를 얻어 영어교사를 초빙하고 공자학당의 중국원어민 교사를 교내에 상주시켜 외국어 학습을 돕기로 했다. 국방부 교향악단의 악기레슨 재능기부를 통해 감성을 키우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도움을 받아 기자 출신 강사가 지도하는 창의적 글쓰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서울대 사범대와 교육 및 학술연구지원 협약도 체결했다. 서울사대는 한민고의 교육협력학교로서 교육과정과 공동 연구프로그램을 개발해 실행하고 서울사대 학생들은 교육실습과 교육봉사활동을 지원하게 된다. 서울대 교수멘토단은 특강과 논문지도를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