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를 추모하며]남아공에서의 기억 속 만델라
*국악계의 유망주이자 ‘국악신동’으로 불리던 유태평양씨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했던 중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아시아엔(The AsiaN)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나갈 무렵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유학을 가라는 말을 아버지께 전해 들었다. 그 당시엔 아프리카 하면 그저 흑인 원시부족들, 무서운 야생 동물들, 끝없는 밀림 정도밖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 중 가장 두려웠던 건 바로 타지인으로서, 다른 인종으로서 현지인들과 섞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남아공에 도착한 순간 나는 상상과는 거리가 먼 곳에 두 발을 붙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처럼 높진 않지만 멋스러운 빌딩들, 셀 수 없이 많은 자동차들, 유럽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집들, 하지만 그 중 어린 마음에 내가 가장 놀라워했던 것은 바로 흑인이건 백인이건 아시아인이건 인종에 관계없이 같이 일하고 있던 공항 직원들이었다. 나는 어떻게 이 많은 인종 사람들이 서로 한 치의 거리낌 없이 잘 살아 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 곳 초등학교 역사 시간에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라는 인물에 대해서 배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게 되었다. 느낌이 묘했다. 어떻게 보면 만델라 전 대통령은 내가 남아공에 4년 동안 있으면서 차별 받지 않고 그 곳 친구들과 서슴없이 지낼 수 있도록 역사적 배경을 만들어 주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오로지 타인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업적을 남긴 분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과 글 속에 남을 것이라고 애도하였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무지개 국가라고 표현된다. 그곳에 사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때문이다. 조상들은 다 다르지만 남아공이 걸어왔던 아픈 역사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다. 그곳 학교에서 배운 것들 중 기억에 남는 역사적 사건 하나는 1940년대 후반에 공식화 되어 1994년 만델라 전 대통령이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폐지된 Apartheid(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 정책이다. 실제 친구들의 아버지들은 인종차별을 직접 겪었던 세대였기 때문에 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인종간 혼인은 물론 화장실, 식사, 교육 등이 분리됐고, 철저한 백인지상주의였다. 이러한 악법과 싸운 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바로 만델라 전 대통령이다.
백인정권에 맞서 수많은 투쟁들과 고초를 겪은 일들에 대해 배우면서 어린 마음에 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 투사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언젠가 학교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보여줬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백인정권에 맞서 투쟁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 나가 모진 고문과 질책을 받았던 장면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흑인인데 그저 백인과 말을 섞었다는 이유로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 다른 인종과 연애를 했다고 가족에게 버림받는 사람 등 어쩌면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아픔들을 다른 방법으로 그들은 느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로벤 섬(Robben Island)을 알게 됐는데, 바로 만델라 전 대통령이 18년간 수감되었던 감옥이 있는 외딴 섬이다. 내가 살던 케이프타운에서 배로 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곳이라 직접 그 감옥을 보고 온 적이 있다.
남아공에서 여러 인종의 친구들이 만델라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잠시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님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한창 아파르트헤이트가 진행되고 있던 시기와 해체된 시기 중간에 낀 세대였기 때문에, 당시 무엇이 옳은지 많이 혼란스러웠다고 회상했다. 특히 백인 친구들은 할아버지들이 다른 인종 친구들과 지내지 못하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직도 일부 할아버지 세대에선 인종차별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만델라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남아공에 있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진심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서로 어울리며 살아 가는 방법을 우리 가슴속에 심어준 채 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