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 칼럼] 남아시아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실상

2007년 한국을 방문한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 <사진=뉴시스>

품위 있는 발전은 가능했던가?

마이크로크레딧이나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아주 오래된 개념이다. 빈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이나 빈민 구제 차원의 지원사업을 일컫는 용어로 워낙 미미한 규모이기에 국가 경제를 크게 나누는 공적 부문, 사적 부문 어디에서도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은 개념이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이후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사적 부문 비즈니스의 새로운 장을 여는 개념으로 변하였다. 그라민 은행은 금융 사업 영역을 넘어서서 야쿠르트 회사인 그라민 다농을 설립했고, 이 야쿠르트 회사를 그라믄 은행의 창시자인 유누스는 세계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라고 했다. 그라민 은행의 ‘사회적 기업’ 비즈니스는 그라민 폰이라는 이동통신사업으로까지 성장해서 사실 마이크로파이낸스 개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빈민들을 위한 구호사업이 아니라 빈민들이 운영하지만, 고이율을 올리는 새롭고 총체적인 블루 오션들을 제시하는 사적 부문으로 그 개념이 변했다.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그라민 그룹의 모체인 그라민 은행의 주주의 98%는 빈민대출자이다. 빈민들이 절대 다수의 비율의 주식을 소유한 기업이 사적 부문의 꽃인 이동통신사업을 포함해서 엄청나게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거대한 사적 기업이 되었다. 인도의 경우에도 SKS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인도의 그라민 은행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서 조지 소로스 같은 대형 투자자로부터 FDI를 끌어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단순한 경제 발전이 아니라 ‘품격 있는 발전(development with dignity)’즉 빈민들이 개발의 혜택을 누리면서 발전한다는 사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품격 있는 발전’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라민 은행으로 알려진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유누스가 한국에서 서너차례 초정 받아 강연을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성공사례로 알려진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실상은 어떠한가?

안드라 쁘라데시 지역에서 인도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전성기를 열었던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Microfinance Institution 이하 MFI)인 SKS 마이크로파이낸스(이하 SKS)는 9월에 본사를 하이데라바드에서 뭄바이로 옮겼다. 2011년 안드라 쁘라데시 주정부가 고율의 이자와 강압적인 회수를 금지하는 MFI 규제 법(Andra Pradesh Microfinance Institution act, 이하 APMFI act, 2011)을 통과시키자 MFI들은 650억 루피의 손실을 기록했다. 1년만에 3만명의 MFI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 외에도 운영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박애주의 자선사업가로 스스로를 선전하고 있는 조지 소로스를 최대 주주로 하여 인도 주식시장에서 MFI중 최초로 상장을 했던 SKS 외에도 쉐어(share), 베이식스(basix), 스판다나(Spandana) 등 다른 MFI들도 APMFI가 주는 타격을 벗어날 수 없었다. 베이식스의 경우에는 아예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로 사업공간을 옮기고 있다.

APMFI는 과혹한 세금을 기업에게 안겨주는 법이 아니라 대출자인 빈민들에게 가혹한 이자와 폭압적인 회수를 규제하는 법일 뿐인데도 왜 MFI들에게 바로 타격을 주었을까? 그것은 MFI들이 25%를 넘는 이율을 부과할 수 없고 폭력적인 회수 방법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금을 상환하지 못 하는 여성의 아이를 납치해서 협박을 하고 나무에 강제로 묶어두는 폭력적인 회수 방법은 가난한 빈민들의 자살의 원인이었다는 것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안드라 쁘라데시 주정부는 여론에 밀려서라도 규제를 강화하고 결국 이 법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법이 제정되고 나서 MFI들의 반응은 “우리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을 모델로 하여 빈곤 일소를 해왔다.” “세계은행도 우리를 원하는데 왜 우리가 악당으로 취급받아야 하는가”였다.

세계은행은 마이크로파이낸스에 대한 투자를 하는 투자기구(Microfinance Investment Vehicle, MIV)중 하나였고 주된 관심사는 상환률이었다. 우리는 빈민 대출자가 대출한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돈을 벌어서 상환했기에 그라민 은행의 상환율이 높다고 알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모델을 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라민 은행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환율이 높은 이유가 다른 MFI로부터 빌린 돈으로 돌려막기나 폭력적인 회수를 집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이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숨은 진실이었다. 방글라데시라고 예외일 수가 있을까? 어떻게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은 선하게 알려져 있는가?

그라민 은행의 첫 번째 수혜자로 전 세계에 알려진 수피아 베굼은 유누스의 책 [Banket to the Poor,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에 나오는 바구니를 엮는 여성이다. 대출자에게 22 센트를 갚지 못해 덫에 걸린 그녀를 구출함으로써 그라민 은행의 신화는 시작되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수피아 베굼은 가난과 병으로 죽었고 가난을 물려 받은 수피아 베굼의 손자는 현재 인력거를 끌면서 살고 있다. 수피아의 가족들에 의하면 그라민 은행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후 은행 직원들이 외국의 기자들을 그들의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라민 은행의 대출을 통한 어머니 성공사례를 눈에 보이는 증거로 그들 이웃의 벽돌집을 수피아 베굼의 집으로 속여서 보여주였다.

이 사실은 방글라데시 국내 언론에 의해 보도된 것이다. 그라민 은행이 그라민 그룹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유누스 일가가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내부자 거래들로 부를 쌓아왔던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98%의 주식을 빈민들이 보유하고 있다는데 왜 이런 유누스 일가 지배가 가능했을까? 대출시 ‘꺽기’(tier-in)의 일환으로 빈민들은 그라민 은행의 주식을 강제로 구매해야 했고, 빈민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기에 그들이 98%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의사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 또한 30년간 배당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여론에 의한 비판이 들끓자 얼마전부터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들이 갑자기 공개되기 시작했을까?

유누스는 2007년? 당을 만들어서 국가권력을 넘보는 시도를 하면서 권력의 눈 밖에 나게 된다. 2010년 10월 세이크 하쉬나 총리는 ‘소액대출업자들은 이 나라 사람들을 그들의 기니피그(guninea pig,실험용 쥐)로 만들고 있다….빈곤 일소의 명분으로 빈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라고 바로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라민 은행과의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800만 가량의 대출가구들은 유누스가 정당을 만든다면 유누스 정당의 영향권 안에서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세이크 하쉬나로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유누스는 2011년 그라민 은행 총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렇게 유누스를 둘러싼 정치권의 보호막이 거두어지면서 그의 ‘악행/진실’이 속속들이 대중에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정부는 그라민 은행의 정부 지분 25%를 50%로 올려서 그라민 은행을 국유화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런 반면 세이크 하쉬나의 정적인 칼레다 지아는 유누스의 편에 서서 그라민 은행의 국유화를 반대하고 있다. 군부와 이슬람 세력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칼레다 지아의 유누스 감싸기는 유누스가 군부의 지원을 받아 정치를 시작하려고 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의혹으로 더해져가고 있다.

유누스는 올해 다시 한번 정당 창립을 시도하고 있지만 국내외 여론은 예전과 다르게 그에게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2010년 노르웨이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인 [소액대출의 덫에 갇혀서 Caught in Micro Debt]는 그라민 은행의 대출자들을 인터뷰해서 높은 상환률 달성을 위해 빈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드러내었다. 사실 방글라데시 MFI들의 높은 상환률에 대한 진실을 밝혔낸 학계의 연구결과들은 10여 년 전부터 있었다. MFI들의 자체 보고서와 그들로부터 용역을? 받은 보고서들에 의해 묻히고 무시당했던 연구결과들이었는데, 이제서야 학계의 연구물들도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있다.

SKS를 비롯한 이들 MFI들은 정상(?)적인 사업이 불가능하다면서 APMFI 법 취소를 청원하였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악덕고리대금업자(loan shark)”이라는 비판 뿐이었다. SKS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면 인도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가 더 이상 빈민 구제의 방법으로는 인정 받지 못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SKS의 역사는 NGO 활동가인 비르끄람 아꿀라(Vikram Akula)가 1990년부터 안드라 쁘라데시에서 여성들로 조직된 인도의 SHG(Self help Group 자활그룹)를 조직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96년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에 자극을 받아 1997년 SKS를 비영리기구로서 설립하였다. 2004년 맥킨지(Mckinsey)에 입사하여 금융 엔지니어링 기법들을 배우고, 2005년 SKS를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로 전환시켰다. 그는 2006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이 되기도 하였고, 2008년에는 월드 이크노믹 포럼의 영 글로벌 리더 상을 수상하였다. 인도의 22개의 주의 수백만 가구에게 소액대출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SKS는 2010년 7-9월 분기의 이윤이 8억 루피였다. 거기에 2010년 10월, 165억4천만 루피로 인도 MFI중 최초로 상장을 할 때는 그라민 은행의 신화를 인도에서도 이어가는 것으로 여겨졌다. 거기에 더해 조지 소로스, 나라얀 무르티(Narayan Murthy, 인포시스의 설립자)가 투자자로 참여할 정도로 인도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전망은 너무나도 밝게 보였다.

그러나 안드라 쁘라데시에서의 급증하는 농민 자살의 실제 원인이 SKS 등 MFI의 폭력적인 회수에 의한 것이 드러나고 규제가 이어지자 회수율은 98%대에서 10%대로 바로 떨어졌다. 기업 가치는 급락했다. 2010년 9월 1490루피였던 주식은 액면가보다도 못한 100루피대로 떨어졌다. 규제 이전의 2010년 7-9월 분기의 이윤은 8억 루피였지만, 규제 이후 2011년 7-9월 분기의 손실은 38억 4000만 루피였다. 2011년 인도의 유누스가 될 뻔했던 비르끄람 아꿀라는 그렇게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9월 SKS는 본사를 사업이 처음 시작되었던 안드라 쁘라데시주의 하이데라바드에서 뭄바이로 옮겨가게 되었다. 안드라 쁘라데시는 더 이상 MFI의 성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2011년 안드라 쁘라데시에서의 APMFI 제정이후 2012년 연방정부 차원에서의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관 법(Micro Finance Institutions (Development and Regulation) Bill 2012)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2년간 1만5000 루피 이상을 빌려줄 수 없으면 이율은 25% 이하, 폭력적인 회수 방법은 처벌하는 것 등 을 골자로 하는 법안들이 인도 전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한 순간 짧았던 마이크로파이낸스 열풍이 ‘한 때의 버블/범죄행각’이라고 대중적인 공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유누스가 아직도 정치까지도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신화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인도에서는 마이크로 파이낸스를 통해서 사업도 성공하고 빈민도 구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거의 사라졌다.

그라민 은행 모델 도입 시도는 인도에서 참담한 실패를 하였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은 이윤을 올린다는 측면에서의 사업은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빈곤 일소를 달성할 수는 없었다.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우리나라에서 자주 논의되고 있고, 그 근거로 그라민 은행과 그라민 그룹이 경영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성공사례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분명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르두흐 조나단(Morduch Jonathan)은 그의 1999년 글 [마이크로 파이낸스 약속(The Microfinance Promise)]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 분열(Microfinance schism)’이란 용어를 정의하였다. 절대다수의 빈민들은 정기적으로 고율의 이자를 지급할 수 없기에 마이크로파이낸스 운영은 ‘자기 운영에 충실한 것’과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파이낸스 분열은 단적으로 말해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냐, 활동가로서 빈곤 일소 활동이냐’중 하나만 있지 사업 성공과 빈곤 일소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정호영 자다푸르 대학 사회학 박사 과정>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One Response to [KIEP 전문가 칼럼] 남아시아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실상

  1. EUM April 13, 2018 at 2:01 am

    글쎄요. 네거티브하기위한 부정적인 측면만 제시한 것 같습니다.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유의미한 수준의 부의 수준 부문에서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건 사실이나, 부의 격차를 줄이는데는 성공했다는 월드뱅크 교수의 논문도 있지요. (마이크로 파이낸스 참가자와 비참가자 비교 상태에서 극심한 빈곤층에서 7%가량의 차이가 있었다.) 부의 수준은 두 그룹이 비슷하고 사실 마이크로 파이낸스 참가자쪽이 조금 더 낮은 수준의 부를 가진 건 사실이나 빈곤에서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지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2013년에 이 글이 써졌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자료를 접하지 못했 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만.. 인도의 MFI와 방글라데시의 MFI는 따로 분석하는 편이 나았으리라고 봅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자체적으로 이자율을 20%로 고정시키는 등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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