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칼럼] 젠더기반폭력② 무엇이, 왜 문제인가?
UN 조사연구보고서는 여성대상 폭력의 원인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개인적 인식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회 구조적인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사회적 신념과 불평등한 권력관계다. 둘째, 여성의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 부족과 사회적 기회 제한 때문이다. 셋째, 여성을 지배하려는 남성의 권력과 통제 욕망, 넷째, 남녀차별적인 공식적, 비공식적 사회제도 등이 그것이다. 이런 구조적 요인들이 남녀차별적인 맥락을 영속시키고 그 차별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이득을 얻는 자가 여성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기여하는 위계를 유지한다. 개인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어도 사회적 폭력을 경험할 수 있다.
예들 들어 성차별주의자와 인종차별주의자의 욕설, 부정적 또는 배제효과를 내는 국가정책, 유해한 문화적/종교적 관행, 여성의 삶에 미치는 분쟁의 영향 등은 사회적 폭력이다. 이런 구조적 폭력이 개개인에 대한 폭력보다 더 광범위하게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폭력의 철폐야말로 국가차원에서 나서야 할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UNICEF와 UN Women이 덴마크 정부와 가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불평등에 관한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15~71%가 친밀한 파트너(배우자)로부터 물리적 또는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매년 50여만명의 여성들이 국경을 넘어 인신매매되고 있다. 더욱이 장애여성과 장애소녀들은 젠더기반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일반 여성들보다 2배 이상 높고 더 장기간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적장애 여성의 83%, 지적장애 남성의 32%가 성폭력의 피해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장기간의 무력갈등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가정)에서 가정폭력을 비롯한 젠더기반폭력의 위험을 고조시킨다. 젠더기반 폭력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과 여아들이지만 폭력의 피해는 남성과 남아들에게도 돌아간다. UN Women은 성폭력 및 젠더기반 폭력이 피해자뿐 아니라 그 가정, 공동체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일부 무장단체들은 그들의 군사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폭력을 조직적으로 자행하기도 한다. 옛 유고슬라비아, DR콩고, 르완다,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우간다 북부, 체첸 등 분쟁지역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성폭력은 ‘전쟁무기로서의 성폭력(sexual violence as a weapon of war)’이라고 지칭된다.
가장 최근인 2012년 3월에도 아프리카 말리(Mali)에서 무장단체들간의 전투 도중 민간인, 특히 여성과 여아를 대상으로 성폭력이 조직적으로 자행된 사례가 보고됐다. 당시 UN Women의 현장조사에 따르면 개인 및 집단 성폭력사례만 50여건이 보고됐는데 사실상 피해자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자들이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피해사실을 숨기곤 하기 때문이다.
젠더기반폭력의 후유증은 대단히 심각하다. WHO는 HIV/AIDS 전염의 맥락에서 볼 때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 VAW)을 긴급한 여성건강문제라고 진단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피해자를 HIV/AIDS에 취약하게 만들고 성병의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분쟁지역에서 여성과 여아들이 성노예, 집단성폭력, 무장반군에 의한 강제결혼, 기타 여러 가지 형태의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으로 인해 집, 가족, 고향을 잃었으며 거의 대부분 폭력 후 검진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요소들이 여성과 여아들을 HIV에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피해자들은 신체적 상해는 물론, 성폭력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정신분열, 사회적 낙인, 배제 등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