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 부자 리카싱

까만 뿔테 안경은 리카싱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310억 달러 보유 포브스 세계 갑부 8위

홍콩은 리카싱(李嘉誠·86)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홍콩 사람들은 리카싱이 건설한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그의 유통업체에서 물건을 사며, 그가 지은 도로, 다리를 건너 출근을 한다. 홍콩 사람이 1달러를 지출하면 리카싱이 5센트의 수입을 올린다는 말까지 있다. 한국에 진출한 왓슨(Watsons)숍도 그의 브랜드다.

리카싱은 적절한 시기에 회사들을 인수 합병함과 동시에 과감한 부동산 투자로 오늘날의 부를 이뤘다. 부동산투자회사인 청쿵실업과 14개국에서 항만과 통신 사업 등을 하는 허치슨왐포아 등을 통해 20여 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리카싱 회장의 개인자산 규모는 310억 달러. 올해 포브스 세계갑부 순위에서 8위에 이름을 올렸다.

1928년 중국 광동성 차오저우에서 태어난 리카싱 회장은 1940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가족을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15세 되던 해에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가 별세, 가족부양을 위해 중학교를 중퇴했다. 15세 나이에 가장이 된 리카싱은 플라스틱 외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 특유의 성실함으로 불과 5년 만에 다니던 회사의 지배인이 된다. 그 후 22세 나이에 빌린 돈으로 시작한 플라스틱 제조회사 청쿵(長江)을 세우며 리카싱 제국은 시작된다.

이 후 그의 나이 30세에 부동산 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 다변화를 시작했고, 홍콩지역의 부동산 매매, 건설 등으로 큰돈을 벌었다.?44세이던 1979년, 영국계 홍콩 거대기업 집단이던 허치슨 왐포아를 사들이며 본격적인 재벌 대열에 들어섰다. 허치슨 왐포아 인수는 영국 식민지 하에서 영국계 자본의 대기업을 화교기업이 인수한 첫 번째 사례로 당시 홍콩은 물론 영국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부와 명성과는 달리 리카싱 회장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0년 된 양복을 입고 3만원짜리 세이코 손목시계를 착용하며 고무 밑창을 댄 평범한 구두를 신는다.

삼성경제연구소 <리더의 수업>에서 그의 성공 비결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교만함을 멀리하고, 지식을 꾸준히 연마하며, 의로운 부를 이루는 것.??2008년 6월 자신이 설립한 중국 광동성 산터우대학 졸업식에서 그는 “내가 지나치게 교만한 것은 아닌지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성공 비결” 이라고 말했다. 그의 집무실에는 ‘멈춤을 알라’라는 글이 걸려 있다. 리카싱 회장은 아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잠자기 전 30분간은 반드시 문학, 철학, 과학, 경제에 관해 읽으며 소설이나 무협지 등 흥미위주의 책은 읽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카싱 회장의 마지막 성공 비결은 기부 경영이다. 1980년 설립한 자선재단을 통해 교육, 의료, 학술 분야에 걸쳐 다방면에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 6조원을 내놓은 그는 “진정한 부귀는 금전을 사회봉사에 쓰려는 참된 마음에 있다”고 말했다.

리카싱은 빅토르와 리차드 두 형제를 두고 있다. 큰 아들은 청쿵실업과 허치슨왐포아 대표, 리차드는 홍콩텔레콤의 경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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