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쿠데타 모의’ 재판, 5년만에 일단락

종신형만 17명…시위대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

터키 사상 최대 규모의 쿠데타 모의 사건인 이른바 ‘에르게네콘'(Ergenekon) 관련 재판이 검찰의 수사 착수 5년만에 일단락했다.

5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외곽 실리브리에 있는 이스탄불 13 형사법원에서 열린 ‘에르게네콘’ 사건 선고공판에서 무려 17명이 종신형을 선고받는 등 300명 가까운 피고들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치안 당국은 이날 판결을 앞두고 소요 사태에 대비해 법원 일대를 전면 봉쇄했으나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 등지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5년 끈 ‘에르게네콘’ 재판, 군부 1인자도 종신형

지난 5년간 터키의 최대 정치사건인 ‘에르게네콘’의 발단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탄불의 한 주택에서 수류탄 27발이 발견된데서 시작한 이 사건은 2008년 검찰이 쿠데타 모의 혐의를 적용해 86명을 구속한 이후 군장성은 물론 언론인과 학자, 변호사, 군소 정당 당수 등을 대상으로 검거 선풍이 불었다.

‘에르게네콘’이란 터키인들의 조상인 돌궐인들이 근원지로 삼고 세력을 길러 나갔다는 중앙아시아 내 전설의 장소다.

검찰은 ‘에르게네콘’이라는 반정부 조직이 정부요인 암살 등을 통해 정치적 혼란을 일으켜 궁극적으로 군부의 개입을 통해 정의개발당 정권의 전복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이날 선고 공판에 선 피고만 275명에 이른다. 이 중 66명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지금까지 공판은 650회 열렸고 130명이 증인대에 섰으며 기소장 등 관련 문서는 3만9천쪽이 넘는다.

이처럼 규모 측면에서도 터키 사상 최대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피고인들도 거물급이 상당수다.

지난해 1월 구속된 일케르 바시부 전 터키군 총사령부 사령관이 대표적이다. 육해공군과 치안군(잔다르마)을 관장하는 군부의 정상인 총사령부 수장이 구속된 것은 터키 역사상 처음이었다.

바시부 전 총사령관과 퇴역 장성 5명, 퇴역 대령 2명 등을 포함해 모두 17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세속주의 지지자 반발…반정부 시위 불씨 살아나나

경찰과 치안군은 이날 법원으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민간인 출입을 통제했으나 법원 인근에서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져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등 진압에 나서 충돌을 빚었다.

수도 앙카라에서도 터키의 ‘국부’인 아타 튀르크의 건국이념인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들 수백명이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우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 튀르크의 군인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지난 5월 말부터 3주 이상 터키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의 대표적 구호 가운데 하나다.

반정부 시위는 정부의 강경 대응과 주도 세력의 부재 등에 따라 지난 6월 말부터 사실상 끝났으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발할 우려도 없지 않다.

터키 정계 소식통은 “현 정권의 이슬람 성향의 정책 강화에 세속주의 지지자들이 반발한 것이 시위의 계기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이번 판결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라마단이 끝나고 대학 개강과 프로축구리그 개막 등이 예정된 9월에 시위가 다시 발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고 말했다.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아드난 케스킨 부대표는 현지 일간지들과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이 사실상 증거를 조작한 기소장에 의존한 것이라며 비난했다.

그는 “우리당 의원들에게 선고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터키 사법 역사상 가장 어두운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스탄불변호사협회 유미츠 코자사칼 대표는 이번 재판이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진행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결국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민족주의행동당(MHP)도 불법 행위는 용납할 수없지만 정부가 에르게네콘 사건을 계기로 야당과 정부의 반대 진영을 억압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은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없는 세력들은 항상 불법으로 권력을 차지하려 한다며 에르게네콘 조직도 이런 집단이라고 논평했다.

친이슬람 정권, 세속주의 첨병 군부 장악

이번 사건은 이슬람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의 세속주의 세력을 약화하려는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2002년 총선 승리로 집권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세속주의 세력의 핵심인 군부를 단계적으로 장악했다.

에르도안 정권의 첫 조치는 집권 이듬해 군부가 국내 정치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스템인 국가안보위원회의 민간화였다.

국가안보위원회는 대통령과 총리, 총사령관, 법무·국방·내무·외교장관, 육·해·공·치안군 사령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로 이 회의에서는 군부의 입장이 반영된 정책들이 논의되고 협의 결과는 내각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부는 장성급이 맡던 사무총장을 민간인으로 바꾸고 다른 정부 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요청할 수 없도록 했다.

이 조치로 군부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이 막혔으며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를 ‘소리 없는 혁명’이라고 보도했다.

2010년 9월에는 국민투표로 헌법에 남아 있는 군부 우위의 상황을 제한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대표적 조항은 군 범죄 혐의자들을 군사법정이 아닌 일반법정에서 재판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는 터키 헌정사상 처음이다.

이처럼 군부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2010년 8월 최고군사위원회에서 확인됐다. 이 회의는 매년 장성 진급을 결정하는 회의로 군부가 추천한 육군사령관의 후임에 대해 이례적으로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해 임명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2011년 8월의 최고군사위원회 회의에서도 정부와 군부 간 이견으로 총사령관과 3군 사령관이 군 인사회의 직전에 전격 사퇴하고 정부 측 의견이 반영된 군 수뇌부 인사가 단행됐다.

에르게네콘 사건 수사 과정에서 민간 검찰이 특전사령부 기밀실을 수색하는 일도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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