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밀림의 ‘야생동물’을 되살리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두 가지 풍경…”밀렵꾼에서 에코투어 가이드로”

지난 봄 여행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한 텔레비전방송 촬영팀과 함께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톤레삽 호수에서 살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앙코르와트에도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익숙해져 버린 풍경에만 렌즈를 고정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새로운’ 게 필요했다.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한국 여행자들이 놓치기 쉬운 것 중 하나, 캄보디아의 야생동물을 찾아 나선 이유다.

당시 우리가 원한 것은 야생 악어와 원숭이였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 쉽게 띄는 야생동물을 ‘야생’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열대의 캄보디아라고 해도 자연 상태의 희귀 야생동물을 맞닥뜨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마치 구세주처럼 도와주겠다고 접근해온 이들이 있었다. 우기에는 벼농사를 짓지만 건기에는 각종 야생동물을 밀렵하던 시골마을 아저씨들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되었다. 야생동물을 촬영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밀렵꾼들을 통해서, 그것도 그들이 놓은 덫에 걸려든 야생동물들을 촬영한다는 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제안을 뿌리칠 수밖에 없었고, 일행은 텔레비전 여행 다큐멘터리에 어울릴만한 소재를 찾아 캄보디아의 동쪽에서 서쪽까지, 남쪽에서 북쪽까지 샅샅이 누비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을 헤맸을까. 캄보디아 남서부에 위치한 ‘지팟’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이라고 밀렵꾼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전직’에서의 직업일 뿐 ‘어제의 밀렵꾼’은 ‘오늘의 야생동물 에코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다. 와일드 에이드(Wild Aid)와 와일드라이프 얼라이언스(Wildlife Alliance)라는 세계적인 야생동물 보호단체가 ‘야생동물 보호도 시급하지만 왜 지역주민들이 야생동물 밀렵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문제를 고민한 끝에 나온 대안인 ‘스베트(CBET; Community Based Eco Tourism)’ 프로그램의 결과였다.

스베트 프로그램을 통해 '어제의 밀렵꾼'과 그 가족들은 에코투어 가이드와 홈스테이 등의 새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발생하는 수익의 80%는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스베트 매니저인 쁘롬 흥 씨에 따르면 캄보디아 밀림 오지의 촌부들이 야생동물을 잡는 이유는 그것을 잡아다 팔 때 부수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사나 채취만으로는 경제생활이 쉽지 않아 택한 고육책이다. 그런데 그것을 ‘야생동물 보호’라는 잣대로 막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일까? 스베트 프로그램의 제안자들은 주민들의 현실을 고려해 무조건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밀렵의 기술’을 선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야생동물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과 동물들의 생활패턴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밀렵꾼들이다. 그러니 그들을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에코투어 가이드로 고용하고, 그들의 아내와 딸들에게는 홈스테이나 음식 판매를, 아들들에게는 유람선이나 차량 운전 등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수익의 80%는 이 사업에 참여한 ‘전직 밀렵꾼’과 그 가족, 즉 지역 주민들에게 돌리고 있었다.

스베트 프로그램의 제안자들은 주민들의 현실을 고려해 밀렵을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선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진은 '스베트 프로그램' 매니저인 쁘롬 흥.

그 결과 지난 2007년 스베트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밀렵과 불법 채취, 벌목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지역민들의 삶이 윤택해진 것은 물론이다. 지팟에 거주하는 623가구 2223명의 주민 가운데 21%가 넘는 480여 명이 스베트 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그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불법적인 일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금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변화의 현장은 캄보디아 동부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2007년 몬둘키리주의 ‘센모노롬’에서 시작된 ‘엘리펀트 밸리 프로젝트(Elephant Valley Project)’라는, 코끼리들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었다.

이 일을 시작한 30살 영국인 청년 잭 하이우드는 “관광이나 노동에 시달리는 코끼리들의 상처를 보고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고 했다. 특히 “캄보디아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인 몬둘끼리주에서는 주민들이 트랙터나 경운기를 살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벌목한 나무를 옮기는 등의 노동에 코끼리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펀트 밸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인 청년 잭 하이우드.

잭은 주민들의 고단한 삶과 코끼리의 처지 사이에서 어떻게 코끼리들에게 온당한 야생의 생활을 돌려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지난한 주민 설득 과정 끝에 잭은 한 마을로부터 650ha의 밀림과 코끼리들을 빌릴 수 있었고, 인터넷을 통해 코끼리를 ‘타는 관광’이 아니라 밀림에서 코끼리의 실제 생활을 엿볼 수 있고 함께 생활도 할 수 있다는 점을 홍보했다. 완전한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적응 훈련을 시키는 과정에 여행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혈혈단신으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초창기엔 고단한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고, 그들로부터 받은 1인당 50달러의 참가비는 땅과 코끼리들을 빌려준 마을 주민들에게로 돌아갔다. 주민들이 이전까지 코끼리를 통해 얻어온 경제적인 이득을 보장해주고, 코끼리는 코끼리대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6년, 사람들의 호응 속에 이제는 야생 상태로 돌아간 코끼리가 모두 11마리에 이르렀다. 물론 몬둘끼리주만 해도 아직 노동이나 관광에 동원되는 44마리의 코끼리들이 있고 캄보디아 전역에는 수백 마리가 남아 있다지만, 잭 하이우드와 그의 동지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조금씩 코끼리들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밀림을 넓혀가고 있었다.

사실 당시 텔레비전 여행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런 내용까지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시청자들의 이국취미를 고려할 때 이 이야기들은 캄보디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있는 코끼리 두 마리 ‘캄돌이’와 ‘캄순이’는 3년 전 이맘 때 캄보디아 정부가 기증해 한국에 온 경우다. 해외로 반출돼 동물원에 갇혀 지내야 하는 코끼리들, 차라리 캄보디아에 있었다면 수 백 분의 일의 확률일지언정 자유로운 생활을 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엘리펀트 밸리 프로젝트나 스베트 프로그램이 필요한 건 어쩌면 한국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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