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쿠시마’…7200살 삼나무가 살아 숨쉬는 이유
환경운동 시인의 유산
일본 큐슈 최남단에 있는 섬 야쿠시마를 찾았다. 제주도 절반만한 크기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섬이다. 해발 1936m의 큐슈 최고봉 미야노우라다케가 바로 야쿠시마에 있다.
야쿠시마에 간 이유가 가장 높은 봉우리를 구경하는 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잘 보존된 삼나무 숲 등으로 1993년 일본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야쿠시마. 그곳에 추정수령 7200살로 일본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삼나무 ‘조몬스기’가 자라고 있다. 야쿠시마는 “1년에 366일 동안 비가 온다”고 할 정도로 강수량이 엄청난 곳이다. 그 양이 산간은 무려 1만mm, 평지도 5000mm에 이를 정도다. 말 그대로 ‘비의 섬’이다. 게다가 여름이면 태풍이 여러 개 지나가기에 나무의 생장이 더딘 편이다. 1년에 겨우 5~6cm 정도 자란다. 그런데 조몬스기는 높이 25.3m, 둘레 16.4m에 달했다. 그 오랜 시간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엄청난 나이와 크기에만 압도될 일은 아니었다. 나무와 숲을 대하는 일본 사회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금은 조몬스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철조망을 둘러쳐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아둔 상태다. 1966년 이 나무를 발견한 이후 관람을 돕기 위해 근처 나무를 모두 베어낸 게 화근이었다. 직사광선이 조몬스기의 몸통에 그대로 닿으면서 습기를 머금고 있던 이끼들이 모두 죽었고, 결국 보호막을 잃은 조몬스기도 하얗게 마르기 시작했다. 더구나 주변 나무를 잘라내면서 드러난 흙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면서 경사진 지반마저 위태로워졌다. 고민하던 일본 환경성은 결국 지금과 같이 30m 밖에서만 조몬스기를 조망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찬찬히 둘러보니 야쿠시마에선 7200살 조몬스기만이 아니라 3000~4000년 된 고목들, 그리고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어린 나무들까지 세심하게 관리 받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17세기 에도시대 이래 성행했던 벌목을 1970년대 들어 전면 금지한 이후 적극적인 식재사업을 펼친 결과이자 바로 그 과정의 풍경이었다.
“그 어떤 빛도 반딧불이와 못 바꿔”
섬의 북서부에 자리 잡은 시라코야마무라라는 작은 마을은 야쿠시마의 오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올해 43세인 사이토 토시히로가 한 증거다. 그의 표정에선 때 묻지 않은 이에게서 풍기는 천진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구석이 엿보였다. 호기심도 많아 보였는데 실제로 대학을 졸업한 뒤 해외봉사를 다니며 세계 각국을 여행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 마을의 자연과 생명을 노래한 ‘한 권의 책’을 접하면서 이주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조개껍데기 하나만 보고도 바다를 읽는 감수성, 느리게 사는 불편과 불안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여유로움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마을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궁금했어요.”
책을 접한 그는 호기심을 이내 실천으로 옮겼다. 일단 지금의 집 바로 아래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그 동네에서 한 달 정도 머물기로 작정했다. 이웃이 고구마밭을 갈러 나가면 따라가 풀을 뽑았고, 집을 고칠 땐 나무를 나르고 망치질을 했다. 그러면서 평화롭고, 무언가 생명력이 넘치는 마을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특히 울창한 삼나무 숲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지난 2000년 아예 시라코야마무라로 삶터를 옮겼다.
“직장이나 학교 문제 아니라면 주거지를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그 어떤 빛을 준다고 해도 반딧불이와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찮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오묘한 생명력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것인데 정작 사람들은 돈과 권력, 명예와 같은 온갖 욕망에 갇혀 그 생명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그의 현재 직업은 야쿠시마 산림보호원이다. 그렇다면 사이토를 시라코야마무라, 아니 야쿠시마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는 그 ‘한 권의 책’은 무엇일까? 그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사이토 아랫집에 살고 있던 야마오 하루미 여사에게서. 그녀는 시인이자 철학자, 농부였던 고 야마오 산세이 선생의 부인이다. 땅과 호흡하며 자연과 친구처럼 살고자 했던 야마오 선생이 온 가족을 데리고 야쿠시마로 이주해온 것은 지난 1977년. 야쿠시마 사람들의 호소에 응답한 결과였다.
벌목 중단, 세계자연유산 되기까지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야쿠시마에선 벌목사업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거대 기업이 국가적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사실 주민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마냥 두고 보기만 할 수도 없었다. 벌목으로 나무가 다 없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결국 몇몇 주민이 ‘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이란 단체를 만들어 숲이 더 망가지기 전에 섬을 구하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떠올린 게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는 시를 써온 야마오 선생을 초청하는 것이었다.
“야쿠시마로 와서 그 실상을 보고 시를 써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섬 사람들에게, 그리고 큰 섬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야마오 하루미 여사는 2001년 삶을 마감한 남편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결혼 전이긴 하지만 남편은 이미 도쿄에서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그가 야쿠시마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남편은 야쿠시마 주민들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창작활동을 계속했지요.”
야마오 산세이는 단순히 환경보호를 위한 글만 쓴 게 아니었다. 섬 생활이 녹록치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땅의 사람’이 되고자 애썼다.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로 악전고투하면서도 밭을 일구고 귤나무를 가꾸며 자급자족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에 대한 신앙과 사색이 넘치는 시와 수필을 써내려 갔다. 그런 과정 속에 야쿠시마에서 벌목이 완전히 중단되고 섬 자체가 일본 최초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지가 될 수 있었다. 야쿠시마의 자연이 “사람 2만 명에 사슴 2만, 원숭이 2만 마리가 살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복원될 수 있었던 이유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부름에 책임 있게 응답하고, 평생을 그들과 함께 살며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나간 야마오 산세이와 그의 영향을 받아 섬 사람이 되길 마다하지 않은 사이토 토시히로. 7200살을 자랑하는 조몬스기와 수천 년 수령의 야쿠시마 삼나무들은 우연히 생긴 관광상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