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터 FTA 발효] 세속주의 터키, 이슬람주의로 회귀 중?
*황의현 중동 베스트 블러거가 알자지라 아랍어판 ‘2012년 중동 결산’에서 ‘터키’편을 번역한 것을 정리해 싣는다. 터키의 최근 정치·사회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황의현 블로거는 알자지라, 알아라비야 등 중동 주요 매체의 아랍어 주간 보고서를 꼼꼼히 번역해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3학년이며 이집트, 시리아 문제에 관심이 많다. -아시아엔(The AsiaN)
③터키의 정치·사회
지난 1년 이슈를 통해 본 터키의 정치·사회?
몇 년 동안 터키는 ‘문제 줄이기’ 정책에 입각한 전략을 취해 왔다. 그러나 2011년부터 터키는 이웃인 시리아에서 시작된 민중 혁명에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게 되면서 지역 내 그리고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리아 내 인도적 상황 악화로 인해 터키의 안타키야의 여러 난민 캠프에 약 14만 명의 난민들이 유입됐고, 이는 터키에게 큰 부담이 됐다. 이런 배경 속에서 터키는 시리아 혁명의 행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는데, 처음에는 터키 고위 관료들이 여러 차례 다마스쿠스를 방문하는 등의 외교적 노선을 이용했다.
그러나 시리아 지도부가 혁명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고수하리라는 것을 확신한 후 터키는 정책을 바꿔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했으며,?2011년 4월 이스탄불에서 약 60개국의 대표들이 참가한 제2회 ‘시리아의 친구들’ 회의를 개최하고 반정부 세력 연합 단체인 시리아 국가위원회(Syrian National Council)를 승인했다.
터키의 시리아 문제에 대한 관심은 다른 이웃 국가들, 특히 이란과의 외교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이란이 시리아와 긴밀한 우방 관계라는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터키-이란 사이의 갈등은 나토의 미사일방어시스템이 터키에 갖춰지고 나토 회원국들이 터키 내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및 수백 명의 나토군을 시리아 국경지대에 배치하기로 결정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이란은 이런 조치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비판했으며 더 나아가 서구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터키에 배치함으로써 ‘세계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기에 이르렀다.
시리아 문제가 터키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해 6월 22일 시리아군이 터키 전투기를 격추시키고 뒤이어 시리아군이 터키 영토를 포격해 사망자가 발생하고 터키군이 응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시리아 사태가 가져온 또 다른 영향은 쿠르드 문제였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노동자당(Kurdistan Workers’ Party) 무장대원들이 일으킨 폭발 및 공격의 배후에 시리아가 있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이런 의심은 쿠르드노동자당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calan)과 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쿠르드노동자당과 시리아 사이의 암묵적인 오랜 동맹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올 3월 압둘라 외잘란이 30년간의 무력투쟁을 포기하고 터키 정부와의 화해를 선언했다. 그동안 터키 군경 4만여명을 죽인 적장임에도 터키 정부는 즉각 화답했고, 그동안 PKK를 테러조직으로 단죄해 왔던 미국과 유럽연합도 환영 메시지를 보냈다.
한편 현 터키 여당인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은 법정에서 군부와 갈등을 벌였다. 지난해 9월 이스탄불 형사법원은 2003년 발각된 쿠데타 모의인 ‘망치 계획’ 가담자들인 군 지휘관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일부 피고인들은 징역 20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앞서 8월에는 육군, 해군의 고위 지휘관 40명 -이 중에는 레젭 타입 에르도안 정부에 대한 음모 기도 혐의로 체포된 사람도 있다-이 퇴역 당했다. 이는 군부가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표시였다.
군부가 지켜온 세속주의 이념을 깨는 또 다른 사건으로는 2012년 11월 터키 정부가 종교 학교에서의 히잡 착용 금지를 해제하고 여학생들이 공립학교에서의 종교 수업 시에는 히잡을 쓰도록 허락한 결정을 내린 것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의 교복 의무화도 폐지했다.
이 결정은 정의개발당 지지세력의 주축인 종교적 보수파들과 이들이 보이지 않게 이슬람 가치를 강제하려 한다고 비난하는 세속주의자들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교육 현장에 관한 것이라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그밖에 터키 정부는 1993년 사망한 투르구트 외잘(Turgut ?zal) 대통령의 사인에 대해 재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외잘 대통령은 1983~1989년까지 총리로, 1989~1993년까지 대통령을 지내면서 군사 통치와 거리를 두고 현 터키의 기반이 되는 경제 구조 개혁을 추진한 인물로, 93년 대통령 재임 시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시체에서 채취한 샘플에 대한 부검이 10월 이루어졌으나, 12월 12일 발표된 부검 보고서는 “그의 몸에서는 소량의 독극물이 검출되었으나 이는 모든 사람의 몸에서 발견될 수 있는 양이며, 그의 독살 증거는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시관들은 그의 사망 원인을 알 때까지 조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