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마닐라 비행기로만 70분…그래도 대선투표 해?

‘18대 대통령선거’ 재외선거 등록마감 나흘 전…’선거 등록률’은 겨우 6.67%

4?11총선 등록률보다 1% 높아…’투표 편리성’과 ‘정치 관심’ 높여야

필리핀 재외선거관리관 신민 영사(사진 왼쪽에서 2번째)와 한인회임원들이 한인식당을 돌면서 재외선거 홍보활동에 여념이 없다.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윤희락 통신원>

지난 7월2일부터 시작된 ‘18대 대통령선거’ 재외선거 등록이 86일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220만여 명의 재외국민 중 14만8702명, 겨우 6.67%만 등록했다.

지난 총선 재외선거 등록률 5.67%보다 고작 1% 높은 정도다. 재외선거 등록이 오는 20일 마감되지만 4일가량 남은 시점에서 등록률이 급상승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재외선거 투표율은 2.53%였다. 재외국민들이 대선에는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4월 총선보다는 투표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봤자 이처럼 낮은 재외선거등록률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저조한 투표율이 불가피하고, 이는 “재외국민 투표가 18대 대선에서 등락을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비웃는 것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 재외선거 공관별 신고, 신청 접수현황 <출처=재외선거관리위원회>

재외선거는 해외 부재자나 영주권자가 거주지 내 공관에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로(시민권자 제외) 전 세계 약 120개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30개 나라 중 일본(2007)과 이탈리아(2010)에 이어 마지막으로 도입했다.

시행초기라서 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투표 편리성 부족 ▲홍보 부족 ▲재외국민의 선거 무관심 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재외국민 투표를 위해 사용된 국가 예산은 약 293억원. 국내 총선 비용(약 2713억원)의 무려 1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각 1표당 약? 52만원의 예산을 사용한 셈이었다.

하지만 또 다시 지난 총선과 비슷한 투표율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역시 예산을 낭비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재외선거 자체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불편한 투표, “생업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우편투표제도와 턱 없이 모자라는 투표 공관 등 편리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재외국민들이 “투표권을 준 의미를 모르겠다”며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미비한 등록률을 높여보려고 국회가 지난 5일 재외선거 관련 법을 개정, 전자메일을 통한 유권자등록을 허용했지만 재외선거 등록률에 그다지 큰 영향을 못 미치고 있다.

국가 휴무일로 지정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내국인들과 달리 재외국민들은 투표 당일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설혹 모국 선거에 관심이 있더라도 생업을 하루 중단해야 되고 심지어 비행기를 타면서까지 장거리 이동을 하는 상황이라는 것.

필리핀에서 한인식당을 운영 중인 김진성(45)씨는 “필리핀에는 오직 투표를 할 수 있는 공관이 오직 한곳 뿐”이라며 “투표를 하러 멀리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장사를 하루 포기하고 투표하러 가기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또 “투표할 수 있는 공관을 늘리면 투표를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 재외선거관리과의 이정호 주무관은 “필리핀에서는 현재 주필리핀한국대사관이 투표소가 설치되는 유일한 공관”이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그럼 수빅이나 세부 등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재외국민들이 대선투표를 하려면?주필리핀한국대사관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는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주필리핀한국대사관은 메트로 필리핀 타긱시(Taguig city)에 있다.

주필리핀한국대사관이 운영하고 있는 재외선거 등록 접수처.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윤희락 통신원>

투표소를 더 많이 설치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치외법권이 미치는 영역 이외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외교관례상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공관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한인총학생회장 김종찬씨는 “필리핀거주유학생들과 재외선거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꼭 필요한 일 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반면 참여율은 저조하다”며 “그만큼 학생들이 선거에 참여하기까지 과정과 선거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재외국민선거의 참여율이 높아진다면 재외동포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 높아지고 재외동포들에게 맞는 정책이 안건화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가 당선되든 상관없다”…무관심도 문제

선거에 대한 무관심 또한 저조한 투표율의 큰 요인 중 하나다. 필리핀대사관이 재외국민 약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재외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97%가 “지난 총선과 올해 이뤄지는 대선 재외선거 도입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재외선거 등록을 하겠다”는 응답은 절반에도 못미쳤다(47%).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공관이 멀어서(60%)”가 가장 많았고, “후보자를 모르거나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30%)”와 “기타(10%)” 순으로 나타났다.

필리핀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정민(28)씨는 “재외국민들이 총선의 후보자들을 알고는 있으나 그들의 인격, 정책 공략, 전략 등은 모르고 있다”며 “재외국민선거에 대한 홍보뿐만 아니라 후보자의 특징을 설명하는 홍보가 필요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재외국민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외국에서 오래 거주한 한인들의 경우 한국의 정치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인물위주가 아니라 정당에 기표해야 하는 방식의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통해서는 본인이 속한 지역 또는 재외국민이라는 동일 집단의 이익을 대표할만한 후보가 없다면 구태여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여 투표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에 따라 “재외국민의 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면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각 정당에서 재외국민을 대표할 수 있을만한 인물을 공천하거나 재외국민들도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쉽지 않은 우편투표제도와 공관 수 증대

올해 처음 이뤄진 재외국민선거는 많은 선거참여율보다는 부정선거를 막기 위한 선거의 공정성과 안전성, 투명성을 첫 번째 목표로 두고 있다.

필리핀대사관 신민 영사는 “몇몇 국회의원 우편제도나 인터넷등록 등 재외선거의 편이성을 위해 개정을 발의했지만 이미 대통령후보자가 나온 이번 선거에서는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스템이 바뀌면 분명히 부정선거가 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을 뿐더러 선거에 혼잡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영사는 또 “현재는 언론 홍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재외선거를 알리고 선거의 중요성을 재외동포들에게 인지시키는 것이 투표율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재외국민, 더 나은 정책 위해 ‘스스로 나서야’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는 재외선거관리위원회와 여야 정당, 한인회, 종교기관 등이 등록률을 높이려고 길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투표 편리성 부족과 무관심 등 기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투표율을 높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4일 남은 기간동안 제도개선도 불가능하므로 투표율 제고는?재외국민들의 선거참여 캠페인이 관건이다.

1972년 중단된 재외국민선거가 지난 4·11총선부터 재개된 역사적 의의를 잘 공유, 성숙한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행사하는 중요성을 분명히 깨닫자는 주문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18대 대선을 위해 세계 158개 공관에 재외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선거관리 준비를 하고 약 300억 원의 예산이 사용된 점도 잊지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필리핀 한인총연합회 이원주 회장은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는 짊어지고 가야 될 책임과 의무,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지구촌 도처의 한민족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국가 비전과 정치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투표하자”고 강조했다. 또 “한인회 입장에서는 특히 교민 권익보호를 통해 모국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 내는 투표참여 독려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마닐라=윤희락 통신원 ?bono2mass@gmail.com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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