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서울지사장 이토료지 칼럼] 일본지진과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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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에서 발생한 고베 대지진과 올해 3월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 두 번의 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했을 때 마침 서울에 살고 있던 저는 한국사회가 보여준 대응의 변화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저는 많은 지인과 친구들로부터 일본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 확인 및 위로와 격려해주는 메일과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진 피해지역에 구조대를 파견하였으며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구호와 함께 전국적으로 일본 지진피해돕기 모금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모아진 일본 대지진 성금은 무려 70억엔을 돌파했으며 이는 해외 재난 지원 사상 최대 규모였다고 합니다.
한편 16년 전인 고베 대지진을 돌이켜보면 당시 한국 정부의 지원이 어느 정도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이번과 같은 대규모 성금모금 운동은 볼 수 없었으며 전체적으로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우연히 저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고학년을 대상으로 일본의 지진피해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본의 비참한 피해상황에 대해 이해해주었습니다만 일부 학생으로부터 과거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행위에 대한 천벌이라는 말을 들어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16년 동안 크게 달라진 것 같은 일본에 대한 감정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제 나름대로 그 이유를 분석해보면 1998년에 시작된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인 개방과 이에 호응하듯이 한국드라마 <겨울연가>를 계기로 시작된 ‘한류’ 열풍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의 배경에는 과거사에 대한 반발도 물론 있겠지만 먼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경제 대국이 된 일본에 대한 동경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감정이 ‘한류’ 열풍을 타고 처음으로 일본 국내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널리 유행하면서 한국인의 자존심도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이 아닐까요?
지난 90년대 후반 IMF외환위기를 겪으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한국은 최근들어 대기업들이 일본기업을 앞지를 만큼 세계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가장 빠르게 위기를 극복하였으며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감을 회복한 한국은 일본에 대한 열등감은 이미 사라졌으며 일본을 대등한 파트너로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사 문제가 전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성금 모금액은 일본에서 내년 봄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3월 말에 발표된 이후 모금액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많은 중학교 교과서가 일본과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다케시마(한국명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기술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영토문제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배 과정에서 섬을 빼앗겼다는 역사인식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의 다케시마(한국명 독도) 영유권을 용인할 경우 또 다시 일본에게 침략의 구실을 주지않을까 우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흔히 한일관계는 일진일퇴(一進一退)로 비유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열 걸음 진전하다가 아홉 걸음 후퇴하듯이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진전되고 있습니다. 두 번의 일본 대지진 피해에 대해 한국사회가 보여준 변화를 생각해보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한일 양국을 오가는 국민들은 작년 처음으로 5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 한일 양국 관계가 앞으로 다시는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민간차원의 상호이해와 교류가 한층 더 강화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