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쟁점이 됐다”
SK그룹 최태원 노소영 부부의 이혼소송에서 법원은 노소영에게 재산분할로 1조 3800억원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노소영은 어떻게 그런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그녀는 재벌그룹의 재산형성에 그만큼 기여한 것일까. 노태우 대통령은 재임 시절 사돈이 되는 SK그룹에 황금알을 낳은 거위인 이동통신권을 가게 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만든 거액의 자금을 사돈에게 맡겼다. 재판부는 그 비자금이 시드머니가 되어 지금의 SK그룹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안개 속에 있던 증거가 법정에 제출됐다. 딸은 아버지가 사돈에게 맡긴 돈을 되찾는 셈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권세를 누리던 차지철은 대통령 꿈을 꾸었다고 한다. 대권을 잡을 꿈을 실현 시키기 위해 만든 비자금을 특정 기업인에게 맡겨 관리하게 했다. 어느 날 차지철은 허무하게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그 기업은 비자금으로 승승장구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며칠 전 법조 원로들과 모여 점심을 먹을 때였다. 오랜 세월 법관을 지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법원이 장물도 재산분할을 해 주나? 대통령이 뇌물로 먹은 돈을 그 딸에게 주라니”
그 자리에 있던 검찰 출신이 그 말을 받아 덧붙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재벌들에게 뇌물을 직접 받았어도 그 밑에서 일하던 비서실장과 검찰총장은 요즈음 정말 힘들게 살아요. 친구가 보자고 해도 밥을 사 먹을 돈이 없대. 대통령이 수천억을 만들 때 그 밑에 있으면서도 단 한푼도 먹지 않은 거지.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드러난다니까.”
노대통령은 거액이 필요했을까. 그는 취임 무렵 대통령 재직 중 재산을 단 일원도 증식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왜 그런 약속을 어기면서 비자금을 만들고 퇴임 후에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발각이 되어 몰락했을까.
나는 30년전쯤 노태우 대통령이 뇌물죄로 재판을 받던 그 법정에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하나하나 듣고 기록해 두었었다. 당시 김영일 재판장이 피고인이 된 노태우 대통령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그런 많은 돈을 받았습니까?”
“재벌회장들이 돈을 주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써달라고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대답이었다.
“명목상이야 그렇게 말해도 결국은 잘 봐달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돈을 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제가 부인하지는 못하겠죠.”
“그 큰 돈을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했습니까?”
“그 돈은 국가 예산 하고는 다르게 비공식적으로 모은 거지만 저는 저대로 그 돈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고민했습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회라뇨? 그건 무슨 의미죠?”
“국정을 책임지다 보면 이상한 것도 착안이 됩디다. 제 관심은 통일이었습니다. 통일기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정권이 끝날 무렵 통일이 다가올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때가 되면 보수와 혁신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봤습니다. 바로 그때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그 돈을 쓰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금융실명제라는 변수가 생겨 차질을 빚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더라도 그 돈을 모두 내놓고 나라가 쓰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돈을 쓰겠다는 거 아닙니까? ”
재판장은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원칙이기는 하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답이었다. 이제 숨겨 놓았던 그런 돈들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에게 가게 됐다. 그 돈의 본질은 무엇일까.
국정감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쟁점이 됐다. 혁신당의 조국대표는 “노태우 대통령의 도움없이 SK는 지금같이 재벌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두 부부가 이룬 재산이 비자금과 정경유착에 의한 범죄수익”이라고 했다. 나는 그 돈의 목적지가 궁금하다. 노태우 대통령의 뜻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