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평화’는 추구하되 ‘평화협정’에만 올인 해선 안돼
무력으로 짓밟고 힘으로 억누른 로마의 평화를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의 헌신으로 이뤄가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라고 한다. 평화(peace)라는 뜻을 가진팍스는 히브리어로 샬롬(שָׁלוֹם, Shalom)인데, 신약성서에서는 에이레네(εἰρήνη)라는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예수가 부활 후 제자들에게 맨 처음 건넨 말씀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Εἰρήνη ὑμῖν!)이라는 인사말이었다(요한복음 20장 26절). 에이레네 곧 샬롬은 하나님의 평화를 기원하는 유대인들의 오랜 일상적 인사말이었다. 예루살렘의 지명에 포함된 ‘살렘’도 ‘샬롬’과 뜻이 같은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신앙이 제도종교 안에서 형식화되고 영성(靈性)을 잃어가자 샬롬의 인사말도 변질되어 갔다. 다윗의 장군 요압은 왕명을 따르지 않는 아마사에게 ‘샬롬’의 인사말을 건네고 입을 맞춘 뒤에 칼로 그의 배를 찔렀다(사무엘하 20:9,10). 평화의 인사가 죽음의 유인책으로 쓰인 것이다. 가룟 유다도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스승 예수를 성전 경비병들의 손에 넘겼다(마가복음 14:45).
아내 이세벨을 따라 우상을 섬긴 아합 왕의 아들 요람 왕이 쿠데타를 일으킨 예후에게 ‘샬롬’ 하고 인사를 건네자, 예후가 이렇게 외친다.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은데 어찌 샬롬(평화)이 있겠는가?”(열왕기하 9:22) 우상숭배자가 건네는 거짓 평화의 인사를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예후는 날쌘 화살로 요람 왕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는 요람의 거짓 샬롬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선지자 엘리사의 몸종 게하시는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을 좇아가 ‘샬롬’하고 인사를 건넨 뒤, 엘리사의 이름을 팔아 나아만에게서 돈과 의복을 받아챙겼다. 샬롬이 탐욕을 감춘 거짓 인사말로 쓰인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엘리사가 저주를 내리자, 나아만의 문둥병이 고스란히 게하시에게 옮아갔다(열왕기하 5:20~27).
아마사를 유인한 충신 요압의 샬롬은 죽음의 인사였고, 요람 왕의 거짓 샬롬에 속지 않은 것은 예후의 지혜였으며, 탐심을 감춘 게하시의 샬롬을 단죄한 것은 엘리사의 공의였다.
오늘도 수많은 샬롬의 속삭임들이 우리 귀를 어지럽힌다. 상대의 경계심을 풀어헤친 요압의 샬롬, 왕좌의 권력을 지키려는 요람 왕의 샬롬, 탐욕을 품고 다가오는 게하시의 샬롬, 배신의 음모를 부드러운 몸짓으로 감춘 가룟 유다의 입맞춤, 그 거짓 평화의 속삭임들이 우리의 삶과 영혼을 유혹하고 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제사장들이 ‘샬롬, 샬롬’하며 평안을 외치지만 참 평안이 없다”고 꾸짖었다(예레미야 6:14). 예수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이렇게 탄식한다. “네가 오늘날 평화(샬롬)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았겠으나, 너는 그 (평화의)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누가복음 19:42).
참 평화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평화는 입으로 외치고 종이에 서명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의 적(敵)과 맺은 평화의 약속은 거짓 샬롬, 위장평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1938년 독일 뮌헨에서 히틀러와 함께 평화협정에 서명한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를 이뤘다”고 으스댔지만, 1년도 채 못 되어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1973년 미국이 남북 베트남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군대를 철수시킨지 불과 2년 뒤에 북쪽이 남쪽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평화협정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남베트남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평화협정으로 평화를 이룬 적이 있었던가?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후 19세기까지의 3500년 역사에서 약 8천 번의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지만, 그 평화의 지속기간은 평균 2년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 에리히 프롬이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에서 밝힌 연구결과다.
70년이 넘도록 중무장 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은 그동안 줄곧 경쟁하듯 평화를 외쳐왔지만,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와 미사일 증강에 몰두하는 중이다. 그 가공할 핵무기 개발을 “일리 있다”거나 “방어용”이라고 감싸준 대한민국 대통령들도 있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북한의 나이 어린 절대권력자가 “남북한은 동족관계 아닌 적대관계”라고 새로이 규정하고 나섰다. 그동안 외쳐온 평화의 구호가 거짓이었음을 자인하고 위장평화 전술을 거둬들인 것은 차라리 솔직하다고 해야겠지만, 민족통일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린 것은 심상찮은 불행의 예고인 듯 섬뜩하게 들린다.
거짓 평안, 위선의 샬롬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가는 오늘날, 지역‧이념‧세대‧정파‧계층으로 갈가리 찢어져 서로 으르렁거리는 이 나라 이 사회 안에 말뿐인 평화의 구호가 아니라 사랑과 관용의 참된 샬롬이 강물처럼 넘쳐 흐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 땅의 남녘과 북녘에도 눈부신 한반도의 평화(Pax Koreana)가 마침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무력으로 이루고 힘으로 유지되는 숨죽인 평화가 아니라, 배려와 상생(相生)의 숨결 충만한 생동감 넘치는 한반도의 샬롬(Shalom Koreana)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