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김영수 한국기자협회 3대 회장·MBC 전 사장
[아시아엔=<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아시아엔> 이상기 기자]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 법률(언론윤리위원회법) 제정에 맞서 한국기자협회 창립(1964년 8월 17일)을 주도한 김영수(金榮洙) 전 MBC 사장이 2일 오후 9시35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9.
경북 청도생인 고인은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1958년 <연합신문> 기자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초년 기자들이 흔히 거치는 경찰서 출입 기자 생활을 건너뛰고 곧바로 정치부에서 외교부와 경무대를 담당, 내내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1960년 <합동통신>에 있을 때는 4·19 직전 마산 시위를 현장 취재했고, <조선일보> 재직 때는 다른 신문에 모두 난 기사를 혼자서 못 썼을 때 사용하는 언론계 은어 ‘도꾸누끼(特拔き)’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자서전 격인 <대한민국 기자>(2015)에 적었다.
<경향신문>을 거쳐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로 일할 때인 1964년 당시 박정희 정권이 신문 기사와 논평을 정부가 심의해서 신문 발행을 정지·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의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하자 국회 기자단 대표 자격으로 ’24시간 취재 거부 시위’를 벌인 데 이어 같은 해 8월17일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등 19개 언론사 기자 대표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기자협회를 창립했다. 결국 언론윤리위원회법은 시행 보류 형태로 유명무실해졌다. 기자협회 1, 2대 회장은 <동아일보> 선배인 이강현(1925∼1977)씨를 옹립했고, 고인은 1966∼1967년 3대 회장을 지냈다.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논설위원, <서울신문> 정치부장과 편집부국장을 거쳐 1973년 <MBC>로 옮겨 1974∼1978년 보도국장을 지냈다. 1979∼1980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거쳐 MBC 자회사인 한국연합광고 사장을 지낸 뒤 1988년 MBC 파업 사태 와중에 잠시 MBC 사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방송개발원장, <강서방송> 사장·고문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서정진씨와 사이에 2남1녀로 김세훈(개인사업)·김수진(한국투자파트너스 상무)·김세의(가로세로연구소 대표)씨 등이 있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6일 오전 7시, 장지 시안 가족추모공원. 02-3410-3151
고인은 2014년 한국기자협회 창립 50주년 특집 기사에서 기자협회와의 인연을 이렇게 회고했다.
“기자협회 창립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희대의 악법인 언론윤리위원회법이 어물쩍 통과되면서 국회기자실에는 ‘배신당했다’는 격분이 가득 찼다. 이를 계기로 기자들의 권익단체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창립 과정에서 누가 어떤 일을 맡았는지, 규약은 누가 만드는지 등을 조사하는 기관원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초대 집행부 구성과 기밀유지가 제일 어려웠다. 당시 기자협회 추진위원장이었던 나는 총회에서 뜻을 모아 기자들의 권익 옹호에 힘써줄만한 동아일보 이강현 선배를 초대 협회장으로 모셨다.”
다음은 연합뉴스 이충원 기자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죽을 각오 없이 국민의 삶을 다루는 자리에 앉지 말라’
어제 세상을 떠난 김영수(1935~2024) 전 MBC 사장의 부고기사를 쓰느라 자서전 격인 <대한민국 기자>(2015)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고인이 이 책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 피습 직후인 1974년 8월22일자 <조선일보> 1면 선우휘(1922~1986) 선생의 ‘단상에 인영이 불견’이라는 글을 소개한 것이 기억에 또렷이 남았습니다.
“물론 죽을 각오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죽는 각오 없이는 국민의 삶을 다루는 지위를 가져서는 안된다. 그와 함께 국민들은 무엇인가 스스로 마음에 다짐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문세광이 총을 쐈을 때 단상에 있던 이들이 저마다 자기 살 생각에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을 질타한 글입니다. 김영수씨가 MBC 보도국장으로 있을 때 저 영상을 단독으로 여러번 방영한 덕에 선우휘 선생도 단상 위를 찬찬히 살펴봤다고 하네요. 5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을 울리는 글이네요.
한편 김영수 기자협회 3대 회장은 2004년 한국기자협회 창립 40돌 기념식에서 역대 회장 가운데, 최 선임자로 참석해 축하떡을 함께 자르며 “기자는 소속사에 관계 없이 대한민국 기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바란다”며 “기자정신이 살아있는 사회가 가장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