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키·농구·축구 장점만 모은 ‘라크로스’ 서울대 여자 동아리 ‘샤락’
‘미드’에 자주 나오는 스포츠…30여 부원 매주 2회 운동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라켓도 아니고, 하키 채도 아닌 것이 퍽 생소했다. 서울대 여자 라크로스 동아리 ‘샤락’ 부원들을 만난 5월 1일 유은진(소비자아동학 21입) 부원이 삐죽 튀어나온 라크로스 스틱을 메고 등장했다. 1m 남짓한 스틱 끝에 잠자리채처럼 그물이 달린 모양이었다. 부원들은 “스틱을 들고 지하철을 타면 무슨 운동이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며 웃었다. 샤락 심채영(생명과학20입)·소지원(물리천문 23입) 공동주장과 고은결(아시아언어문명 20입)·유은진 부원에게 낯설지만 신기한 라크로스 이야기를 들었다.
샤락 부원들은 “미드(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스포츠”라고 라크로스를 소개한다. 북미 원주민들이 즐기던 운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물이 달린 스틱으로 테니스 공보다 작은 고무 공을 갖고 달리다 골대에 넣어 득점한다. 골대는 하키와 비슷한데 가로, 세로 각 1.8m로 정사각형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북미에선 하키와 1, 2위를 다투는 인기 스포츠다.
국내엔 2000년대 초반 들어와 고교 운동부를 중심으로 전파되고 국가대표팀도 생겼다. 서울대에는 반짝 생겨났다 없어졌던 팀을 라크로스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이혜민(정치외교 17입)씨가 2017년 ‘샤락’으로 재창단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30여 명의 부원이 활동 중이다. 주 2회 연습하고 그 중 하루는 라크로스 국가대표 출신 코치의 지도를 받는다.
라크로스를 가리켜 ‘하키, 농구, 축구의 장점만 모은 운동’이라고 한다. 패스와 슈팅은 물론이고 농구의 속도감과 상대를 속이는 페인팅, 축구의 질주, 하키의 컨트롤 등 요소가 녹아들어 색다른 재미를 창출한다. 공을 잡고 슈팅 하기까지 시간이 유독 짧아 경기가 속전속결이다. 10초에 한 번씩 골이 터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두 발로 하는 운동 중 가장 빠른 경기’라는 별칭도 얻었다.
하지만 막상 라크로스 스틱을 보면 생각보다 그물이 얕아 ‘여기에 공을 넣고 달릴 수 있을까’ 싶다. 라크로스 경기에서 공을 가진 선수가 스틱을 수직으로 세워 연신 몸 쪽으로 감듯이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심력을 이용해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던지기 위한 ‘크래들링’ 기술이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와서부터 익숙해질 때까지 가르치는 라크로스의 기본이다. 고은결씨는 “라크로스에선 공격수가 수비수를 제치는 움직임인 ‘닷지(Dodge)’가 중요한데, 상대를 속이고 급격하게 진행 방향을 바꾸거나 발을 찍고 돌아서 뛰어갈 때, 또 상대가 스틱을 밀거나 치며 몸싸움을 걸 때 공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크래들링 기술이 관건”이라고 했다. 떨어진 공을 스틱으로 주워 올리는 ‘그라운드 볼’도 중요한 기술이다.
“6개월 정도 연습했더니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어느 정도 갈 수 있게 됐다”는 소지원 주장의 말에 다른 부원들이 “지원이는 재능 있는 편이다. 보통은 1년 정도 걸린다”며 치켜세웠다.
그물 달린 스틱 덕에 좋은 점도 있다. 고은결씨는 “스틱에 넣으면 같은 팀도 누가 공을 가졌는지 잘 몰라서 패스하거나 공을 받고 싶을 때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고 했다. “‘언니’ 붙일 시간도 없어요. 지난 경기 때도 아직 말을 안 놓은 부원들이 있어서 바로 놓으라고 했죠.” 덕분에 경기 한 번 뛰고 나면 몰라보게 친밀해진다.
다양한 종류의 경기를 운용할 수 있는 것도 재미 요소다. 보통의 라크로스 대학리그는 10명이 출전해 15분씩 4쿼터를 뛰는 ‘텐 온 텐’이 정석. 여기에 6명이 출전해 8분씩 4쿼터로 경기하는 식시즈(Korea National Sixes League·KNSL) 리그가 1년 내내 열린다. 겨울엔 실내에서 열리는 ‘인도어 리그’에 5인 1팀이 되어 나간다. 샤락은 1년에 10번 정도 꾸준히 대회에 출전하면서 승리 경험을 쌓고 있다.
국내에 라크로스 저변이 아직 넓지 않다. 소지원 주장은 “많은 운동 동아리가 있지만, 라크로스를 하려면 대학 동아리가 좋은 기회 같았다”고 했다. 참신한 운동을 찾아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미드에서 접하고 신기해서 찾아온 부원도 있다. 간혹 학창시절 라크로스를 해본 국제 학생도 들어온다. 본래 축구장 만한 경기장을 뛰어다녀야 하지만, 아직 운동부 아닌 중앙동아리 소속이라 대운동장 한편과 농구 코트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하는 점은 아쉽다. 선배들의 도움 덕에 스틱 등의 공용 장비는 넉넉하게 갖춰뒀다.
대회를 앞두고 선수가 모자랄 때 선배들에게 ‘SOS’를 보내면 객원 선수로 경기에 뛰어준다. 팀을 창단한 이혜민 선배도 코치를 맡아준 적 있다. 심채영 주장은 “선수가 많아져 언젠가 OB·YB전을 열 수 있길 기다린다. OB팀 이름도 생각해 뒀다”며 웃음지었다. 국내에 여자 대학 팀은 서울대와 한국외대, 연세대, 이화여대, 고려대 등이 있고 남자 대학 팀은 한두 팀 남짓. 최근 샤락이 주도해 서울대 남자 라크로스팀을 모집했다. 대여섯 명 정도가 모여, 샤락에서 연습을 돕고 있다. 남자 라크로스는 스틱 그물이 좀더 깊은 대신 몸싸움이 심해 고글과 마우스가드만 끼는 여자 경기보다 헬멧과 글러브 등 보호 장비가 더 많다.
라크로스를 통해 이들은 팀 스포츠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운동을 함께 즐기는 동질감, 대학 라크로스의 싹을 틔우는 뿌듯함은 덤이다. “내향적인 편이어서 팀 스포츠는 해보지도 않고 안 맞는 줄 알았어요. 라크로스를 하면서 인간관계도 좀 더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골키퍼라 늘 스쿼트 자세로 대기하고, 스틱도 다르다 보니 필요한 운동을 찾아서 하게 되고요.”(심채영)
“일본에서 기업들이 여자를 뽑을 때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 클럽이 라크로스래요. 팀 스포츠니까 조직 생활도 잘할 것 같고, 다른 구기종목보다 마이너해도 꾸준히 해온 모습을 좋게 보는 것 같아요. 팀플(조별 발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라크로스를 하면서 여러 명이 하나의 목표를 만든다는 게 정말 재밌다는 걸 느껴요.”(유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