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북한서 ICBM 연구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 “1호 법안 ‘이공계지원 특별법 개정안’”
“이공계 지원, 한국 최우선 과제…과방위, 과학기술과 방송 분리 운영해야”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젊은 의원답게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이다. 아이디 ‘2guaman’(이과맨). 그에겐 한국의 어떤 공학도도 갖지 못한 이력이 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북한 김정은국방종합대학 화학재료공학부에서 ICBM을 연구하다 2009년 북한을 탈출했다. 이듬해 서울대 재료공학부 대학원에 입학, 201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대제철에서 7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국민의힘 비례대표 2번으로 22대 국회에 입성했다. 역대 4번째 탈북민 출신 의원이다. 그의 최우선 관심사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과 육성이라고 한다. 상임위도 탈북민 의원이 선호하는 외통위(외교통일위원회)가 아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택했다. 1호 법안으로 ‘이공계 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7월 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박충권 의원은 “민생과 과학기술을 살리기 위해 연구·산업 현장에서 정치 현장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가 발의한 이공계 지원 특별법 개정안은 △대학원생 연구생활 장학금 확대 △병역특례 제도 개선 등이 골자다. 동시에 국가가 기업부설 연구소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기업부설연구소법’,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연 단위 지역과학기술혁신 계획을 수립하는 ‘지역 과학기술 혁신법’도 발의했다. 이른바 ‘대한민국 과학기술 살리기 프로젝트’ 3법이다. 그는 “보좌진이 열심히 했다”고 자신을 낮췄지만 스스로 한국의 이공계에 몸담고, 가까이서 동료들의 어려움을 지켜본 경험이 영향을 줬을 터다.
“이공계인들이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학원생이 받을 수 있는 연구비가 최대 250만원인데 서울대조차 풀로 받는 연구실이 많지 않아요. 100만원에서 140만원 정도 받아 월세 내면 생활비 쓸 것도 없죠. 부모님에게 손 내밀지 않더라도, 집안이 조금 가난해도 대학원에 들어와서 연구하고 생활해나가는 데 부족함 없는 지원이 필요할거라 생각했어요.”
최근 정부가 약속한 스타이펜드(대학원생 연구생활장학금) 강화를 뒷받침할 법안이지만, R&D 예산 삭감으로 상처가 큰 연구 현장을 다독이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다. “이공계 지원 특별법만으로 이공계가 처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해결을 위한 첫 단추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법안 진행 과정에서 이공계인들께 조언을 구하며 보완해 갈 겁니다.” 그는 연구자들의 직무발명 보상 확대, 지적재산권 보장 관련 법안과 과학기술공제회 지원 범위 확대 정책 등도 꼼꼼하게 준비 중이라고 했다.
탈북 후 그는 애초 서울대 경영대 진학을 준비했다. “한국 사회를 잘 알지 못하는 탈북민 청년에게도 공학은 성공적인 진로 같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서울대 지도교수가 인턴십을 제안해 이공계에 복귀했고, 공학 연구의 재미를 되찾았다.
“말투도 용어도 다르고, 영어 수업은 알아듣기 힘들어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완전히 부서졌지만 1년간 4시간도 못 자고 공부했더니 할 만해지더군요.” 관악구 신림동 녹두거리에서 자취하며 한국 청년들의 고단함을 피부로 느낀 것도 큰 경험이었다. “녹두거리에선 저도 ‘100에 30’ 같은 싼 곳만 골라 다녔다”며 “요즘 서울대 앞에 경전철이 들어와서 동네가 좋아졌다는데, 청년들은 혹시 월세가 올라 부담이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한국 사회 정착을 물심양면 도와준 이들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사람도 있었다. “2017년 한 일간지에 대한민국 핵무장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가 지도교수님께 호되게 혼났습니다. ‘다신 정치에 참여 안 하겠다는 각서 쓰고 연구실에 남든가, 아니면 짐 싸서 나가라’고요.” 세상의 눈에 띄는 일만은 하지 않길 당부하던 스승이었다.
“제가 상할까봐 걱정하신 거죠. 국민의힘의 인재영입 발표가 나고 사모님께 먼저 전화 드렸다가 2시간 혼났습니다. ‘이미 결정한 것 아니냐. 1년간 집에 방문 금지령 내리실 텐데 교수님은 내가 설득하마’ 하시기에 기다렸죠. 한 달 후 연락 드렸더니 교수님께서 ‘이왕 시작한 거 잘해보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총선까지 두 분께서 정말 많이 기도해 주셨어요. 제겐 부모님 같은 분들입니다. 늘 낮은 자세로 봉사한다는 신조셔서 언급을 싫어하시지만, 강신후 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님이십니다.”
그는 북한 무기 전문가로서 외교안보에 물러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오물풍선, 북러 조약 체결 등 북한의 도발엔 ‘강대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쉬는 틈 없이 일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며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 의회폭거 등 정쟁에 치중한 의정활동이 큰 원인”이라고 했다.
과방위에서도 방송4법 등 정쟁이슈에 과학기술은 후순위로 밀려난 상황이다. 박 의원처럼 이공계 전문성을 갖춘 의원들이 정작 과학기술 외의 정치 쟁점에 힘을 소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4차 전체회의까지 올라온 안건 40여 개 중 과학기술 관련은 단 1건도 없었습니다. AI, 이공계 인재양성, R&D, 우주항공, 반도체 등 산적한 현안이 많은데도요. 아예 과학기술과 방송을 분리하는 위원회 운영을 제안한 상태입니다.”
탈북민·젊은 초선의원·비례대표·이공계 출신 등 국회에서 소수자의 위치라 힘들지 않냐는 질문엔 고개를 저었다. “탈북민이자 청년, 공학도 출신인 제가 가진 3개 아이덴티티의 교집합은 ‘미래’입니다. 그렇기에 제 정치적 소명은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고, 미래세대가 희망을 회복할 수 있는 의정활동을 해나가겠습니다. 앞으로 활약을 기대해 주십시오.”